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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 극락보전 신중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536
한자 文殊寺極樂寶殿神衆圖
이칭/별칭 「문수사 극락보전 제석·천룡도」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문수골길 201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용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892년 5월연표보기 - 「문수사 극락보전 신중도」 제작
현 소장처 수덕사 근역성보박물관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2길 79[사천리 20-1]
원소재지 문수사 극락보전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문수골길 201[태봉리 산5]
성격 탱화
작가 약효|상옥|능호|이눌
서체/기법 면 바탕에 채색
소유자 문수사
관리자 수덕사 근역성보박물관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 문수사 극락보전에 있던 신중도.

[개설]

불법승을 수호하는 호법신을 그린 신중도는 조선 후기에 크게 유행하였다. 언제부터 신중도가 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제석천을 단독으로 그린 고려 후기의 제석천도에서 그 시원을 찾을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고려 후기 제석천도처럼 제석천이 단독으로 조성되면서 그와 짝을 이루는 천룡도가 제작되었으며, 18세기 중반에는 범천(梵天)·제석천(帝釋天)과 위태천(韋駄天)을 한 화면에 그린 신중도가 유행하였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에는 대자재천, 예적금강이 신중도의 새로운 주존으로 등장하였으며, 위태천의 권속으로 팔부중외에 산신, 조왕신 등의 토속천이 추가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문수사 극락보전 신중도」는 1892년 대우당(大愚堂) 능호(能昊)가 밑그림을 그리고 수화승 금호당(錦湖堂) 약효(若效)의 주도로 상옥, 이눌 등이 참여해 제작하였다.

[형태 및 구성]

「문수사 극락보전 신중도」는 액자형으로 화면 크기는 177.5×159.5㎝이며, 면 바탕에 채색하였다. 화면 상단에는 범천과 제석천을 중심으로 한 천부(天部) 권속과 구름을 경계로 하단에는 위태천을 중심으로 한 팔부중(八部衆)을 두어 상하 이단으로 구성하였다. 화면에서 범천과 제석천, 위태천을 두드러지게 표현하고 권속을 간략하게 표현하였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범천과 제석천은 합장을 하고 있으며 이들 아래에는 제왕형의 천자(天子)와 당(幢)과 번(幡)을 든 천녀, 공양물을 들고 악기를 연주하는 천녀들이 에워싸고 있다. 깃털 투구에 갑옷을 입고 있는 위태천은 금강저를 손에 들고 있으며 그 아래로 무장을 한 신장과 부채를 든 산신(山神), 조왕신(竈王神)으로 추정되는 경전을 든 신장이 자리하고 있다. 「문수사 극락보전 신중도」는 기본적으로 약효가 그린 「갑사 대자암 신중도」[1885], 「신원사 영원전 신중도」[1887]를 모본으로 하고 있으며, 이 신중도에서도 경전을 든 신장이 표현되고 있다.

[특징]

약효는 「문수사 극락보전 신중도」의 밑그림을 제자인 능호에게 맡겼으며, 능호는 조선 후기에 가장 많이 제작된 범천과 제석천, 위태천이 상하로 배치된 형식으로 출초하였다. 존상 묘사와 설채법에서 있어 범천과 제석천, 위태천 등에서는 약효 특유의 평면적인 표현이 사용되었으나, 팔부중과 기타 권속에는 강한 음영법이 사용되었다. 또한 구름은 바림질이 짙고 색이 단절되는 방식으로 채색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표현은 밑그림을 낸 능호, 상옥, 이눌 등의 화풍으로 짐작된다.

[의의와 평가]

「문수사 극락보전 신중도」에는 약효가 선호했던 전통적인 신중도 형식과 평면적인 표현이 반영되어 있는 동시에 존상에 짙은 음영법이 사용되고 있어 신경향적인 요소가 혼재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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