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8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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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仁卿 |
영어음역 | Jeong Ingyeong |
이칭/별칭 | 춘수(春叟),양렬(襄烈)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이해준 |
출생 시기/일시 | 1237년 - 정인경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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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254년 - 과거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256년 - 원의 침입을 물리쳐 제교(諸校)가 됨 |
활동 시기/일시 | 1274년 - 시종1등공신(侍從一等功臣)에 오름 |
활동 시기/일시 | 1280년 - 서산군(瑞山君)으로 봉해짐 |
활동 시기/일시 | 1288년 - 상장군에 오름 |
활동 시기/일시 | 1299년 - 판삼사사(判三司事)가 됨 |
몰년 시기/일시 | 1305년 - 정인경 졸 |
출생지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 |
거주|이주지 | 대사동 - 충청남도 서산시 석림동 |
묘소|단소 | 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 산95 |
사당|배향지 | 송곡사[현 송곡서원] -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무학로 1353-9[애정리 495]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서산 |
대표 관직 | 첨의중찬 |
[정의]
고려 후기 서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서산. 자는 춘수(春叟). 아버지는 송나라가 망하자 고려로 귀화한 정신보(鄭臣保)이다. 이후 정신보는 서산에 정착하여 살았다. 어머니는 고창군부인 오씨이고, 부인은 양주군부인 진씨이다. 동생은 정준경(鄭俊卿)이다.
[활동 사항]
정인경(鄭仁卿)[1237~1305]은 1254년(고종 41) 과거에 급제하고, 1256년 원나라의 침입을 물리치고 공을 세워 제교(諸校)가 되었다. 1269년 충렬왕이 원나라에 갈 때 섭교위(攝校尉)로 수행했으며, 돌아오는 길에 임연(林衍)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원나라로 되돌아가도록 하는 등 수습에 공을 세웠다. 이 공으로 1274년(충렬왕 즉위) 시종1등공신(侍從一等功臣)[『고려사』 정인경 열전에는 2등공신으로 되어 있으나 여기에서는 세가의 기록을 따름]에 오르고, 1280년에는 서산군(瑞山君)으로 봉해졌다.
1284년(충렬왕 10) 정인경이 과거 직산(稷山)과 신창(新昌)에 침입한 몽고군을 습격, 많은 전과를 올린 것을 가상히 여긴 충렬왕은 고향인 부성현(富城縣)을 서산군(瑞山郡)으로 승격시켰다. 부성현은 폐현이 되어 102년간이나 충주, 공주, 운주[현 홍성] 등의 월경처로 있었다. 1288년에는 상장군에 올랐다. 1299년 판삼사사(判三司事)가 되어 정조사(正朝使)로 원나라에 다녀왔다.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를 거쳐 첨의중찬(僉議中贊)으로 치사하였으며, 벽상삼한삼중지광 추성정책안사공신(壁上三韓三重大匡推誠定策安社功臣)의 호를 받았다. 성품이 정직하고 몽고어에 능해 통역관으로 이름이 알려져 원나라로부터 무덕장군 정동성이문관(武德將軍征東省理問官)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정인경의 가장 큰 업적으로는 외교력으로 동녕부를 폐지하였고, 몽고군에 잡혀갔던 수많은 유민들을 외교력으로 찾아왔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묘소]
정인경의 묘소는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 구릉 지대의 나지막한 남향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묘역의 정상에는 정신보와 그의 부인 고창군부인 오씨의 묘소가 있는데, 묘비는 1930년에 세워진 것이다. 정인경의 묘역에는 정인경과 그의 부인 양주군부인 진씨의 묘비,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조선 시대에 후손 정인홍(鄭仁弘)이 인조반정으로 참형되고 일가에 큰 화가 미쳐 묘역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채 실전되었다가, 1920년대에 지금의 묘소를 되찾게 되었다고 전한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양렬(襄烈)이다. 1694년(숙종 20)에 창건된 송곡사(松谷祠)[현 송곡서원]에 정신보·정인경이 배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