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8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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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允璉 |
영어음역 | Han Yunr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해준 |
[정의]
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청주. 아버지는 한서정(韓瑞貞)이다. 한서정은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토벌하는 토포사(討捕使)에 임명되었으나 가지 않아 귀양살이를 하였다. 후에 북방우후(北方虞侯)에 제수되었다. 어머니는 전주 이씨로 영의정을 지낸 이배(李裵)의 딸이다. 부인은 문화 유씨로 현감을 지낸 유석정(柳碩汀)의 딸이다. 서산의 청주 한씨는 입향조 한정덕(韓正德)의 아우 한정수(韓正粹)의 후손들이다. 서산 청주 한씨는 조선 후기 들어 활동이 두드러졌다. 한정수의 증손자 한서정에서 시작하여 한윤련, 한익, 한영희(韓暎憙), 한경춘(韓慶春)으로 이어진다. 그중 한경춘과 아들 한여현(韓汝賢)은 1619년(광해군 11) 서산의 사찬 읍지인 『호산록(湖山錄)』을 편찬하였다.
[활동 사항]
한윤련(韓允璉)의 활동 시기는 손자 한영희[1518~?]의 생몰년으로 짐작해 볼 때 1400년대 후반으로 여겨진다. 한윤련은 학행을 겸비한 청렴한 성품으로 20세에 향읍의 추천을 받아 개령현감과 밀양부사를 지냈다. 유생의 교육을 중시하였으며, 부임지마다 농사를 권장하고 빈민 구제와 구휼 활동에 힘쓰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호산록의례고상(湖山錄依例考詳)』에도 그의 업적이 특출하여 칭송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호산록(湖山錄)』에 고을 사람들이 한윤련의 선정비를 세워 주었다고 적혀 있으나 전해지지 않는다.
[묘소]
묘소는 본래 경상남도 창원시에 있던 것을 이장하여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옹안리 산 17번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