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940 |
---|---|
한자 | 趙存世 |
영어음역 | Jo Jonse |
이칭/별칭 | 선계(善繼),청호(聽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춘진 |
출생 시기/일시 | 1562년 - 조존세 생 |
---|---|
활동 시기/일시 | 1582년 - 생원시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590년 - 증광별시 병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예문관봉교 겸 춘추관기사관으로 『명종실록』 찬수에 참여함 |
활동 시기/일시 | 1618년 - 공조참판 임명 |
거주|이주지 | 문지촌 -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 |
성격 | 문신|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양주 |
대표 관직 | 공조참판 |
[정의]
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가계]
본관은 양주. 자는 선계(善繼), 호는 청호(聽湖). 할아버지는 좌참찬 조사수(趙士秀)이고, 아버지는 조지(趙摯)이다.
[활동 사항]
조존세(趙存世)[1562~?]는 1582년(선조 15) 생원시에 합격하고, 1590년 증광별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2년 예문관봉교 겸 춘추관기사관이 되어 『명종실록(明宗實錄)』의 찬수에 참여하였다. 한성부우윤·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장례원행판결사 등을 거쳐 1618년에 공조참판이 되었다.
조존세는 효성도 지극하였다. 아버지가 죽자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르고, 한 번도 마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이에 주변의 사람들이 극진한 효자라고 칭송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파천(播遷)[임금이 도성을 떠나 다른 곳으로 피란함]하는 어가를 따라서 피란길에 나섰다가 혼란 속에서 어머니를 잃어 버렸다. 사방을 뒤진 끝에 적지에 있는 어머니를 간신히 빼내 문지촌(文智村)[현 서산시 지곡면 연화리]에서 6년 동안 모셨다. 이때도 밤낮으로 문안을 여쭙고 맛있는 음식을 챙겨 드리는 등 정성을 다하였다.
[상훈과 추모]
예를 갖추어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것이 조정에 알려져 특별 포상으로 조지서(造紙署)의 별좌(別坐)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