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12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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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玉鉉 |
영어음역 | Gim Okhyeon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춘진 |
출생 시기/일시 | 1781년 - 김옥현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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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800년 4월 4일 - 김옥현 졸 |
추모 시기/일시 | 1808년 - 정려 받음 |
묘소|단소 | 묘소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가사리 |
사당|배향지 | 김옥현 효도비 -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김해 |
[정의]
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김해. 김일손(金馹孫)의 후손이다.
[활동 사항]
김옥현(金玉鉉)[1781~1800]은 1797년(정조 21) 5월 아버지가 살인 혐의로 붙잡혀 서산 감옥에 투옥되자 16세의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따라가서 곁을 지켰다. 김옥현이 하도 간절하게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하니 옥리(獄吏)도 그의 효심에 감동하였다. 주변에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관찰사에게 혈서(血書)를 보내기도 하였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최후의 수단으로 임금을 만나고자 상경하였다. 김옥현은 서울 금호문(金虎門) 밖에서 들고 나는 대신들을 붙잡고 아버지의 사면을 호소하였으나 성과를 얻지 못했다.
동짓날에 임금이 행차한다는 소식을 듣고 혜정교(惠政橋) 밑에서 기다렸다가 임금의 가마가 나타나자 웃옷을 벗고 쇠를 두들기며 큰 소리로 억울한 사연을 알렸다. 임금은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형량을 줄여 주고, 3년 간 서울 근교에서 유배 생활을 하도록 하였다. 김옥현은 유배지에서도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였다. 사면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김옥현은 과로로 병을 얻어 1800년(정조 24) 4월 4일 죽었다. 그의 나이 스무 살이었다.
[묘소]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가사리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순조실록』에 1808년(순조 8) 암행어사가 김옥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효심을 가상히 여겨 임금에게 아뢰니 정려(旌閭)를 내려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같은 해 8월 9일 터를 잡고 상량(上樑)하여 9월 27일에 현판을 걸었다.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 대림아파트 앞에 효도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