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30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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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瑞山開心寺五方五帝位圖-四直使者圖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개심사로 321-86[신창리 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명희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2년 4월 25일 - 서산 개심사 오방오제위도 및 사직사자도 보물 제1765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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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서산 개심사 오방오제위도 및 사직사자도 보물 재지정 |
제작 시기/일시 | 1676년 - 서산 개심사 오방오제위도 및 사직사자도 제작 |
현 소장처 | 개심사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개심사로 321-86[신창리 1] |
원소재지 | 개심사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개심사로 321-86[신창리 1] |
성격 | 불화 |
재질 | 견본[중방 황제지군·동방 태호지군·남방 염제지군]|마본 채색[서방 소호지군·북방 전욱지군]|마본 채색[사직 사자도] |
크기 | 139.4×84.5㎝[동방 태호지군도]|142×84㎝[중방 황제지군도]|130×85.8㎝[연직 사자도]|130×86.2㎝[일직 사자도] |
작가 | 일호(一浩) |
소유자 | 개심사 |
관리자 | 개심사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개심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화.
[개설]
서산 개심사 오방오제위도 및 사직사자도는 중국의 고대 제왕인 오제(五帝)와 명부(冥府)의 사직 사자(四直使者)를 그린 불교 의식용 불화이다. 다섯 방위를 다스리는 오제에 대한 신앙은 고대 중국 유가(儒家)의 경전인 『예기(禮記)』에서부터 나타나는데, 오제에 대한 인식과 명칭은 문헌에 따라 차이가 있다. 그러나 대체로 동·서·남·북·중앙의 다섯 방위와 이에 따른 색을 결합하여 동쪽은 청제(靑帝), 남쪽은 적제(赤帝), 서쪽은 백제(白帝), 북쪽은 흑제(黑帝), 중앙은 황제(黃帝)로 신앙되었다. 또한 각각 태호지군(太皡之君), 소호지군(少皥之君), 염제지군(炎帝之君), 전욱지군(顓顼之君), 황제지군(黃帝之君)으로 명명되었다.
사직 사자도(四直使者圖)는 사명(使命)을 수행하는 사자(使者)를 그린 불화로, 연직 사자(年直使者), 월직 사자(月直使者), 일직 사자(日直使者), 시직 사자(時直使者)로 이루어졌다. 사람의 태어난 해·달·날·일시를 담당하기에, 망자(亡者)를 감찰하고 명부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는 직부 사자(直符使者), 감재사자(監齋使者)와는 기능적인 차이가 있으며, 지장보살도나 시왕도처럼 명부의 존상이 아닌 오방 오제위도와 하나의 세트로 인식되었다.
오방 오제위도와 사직 사자도는 총 아홉 폭의 완결된 형태로 조성 기록을 갖추고 현존하는 예는 드물다. 서산 개심사 오방오제위도 및 사직사자도는 결실된 폭 없이 전하며 1676년이라는 제작 시기, 제작자, 증명, 화주, 시주자에 대한 정보도 남아 있기에 2012년 4월 25일 보물 제176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그림의 상단 우측에는 도해된 인물의 명칭이 기록되어 있으며 하단의 화기(畵記)에는 강희(康熙) 15년, 즉 1676년에 화승(畵僧) 일호(一浩)가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형태 및 구성]
서산 개심사 오방오제위도 및 사직사자도 가운데 동방 태호지군도는 139.4×84.5㎝, 중방 황제지군도는 142×84㎝, 연직 사자도는 130×85.8㎝, 일직 사자도는 130×86.2㎝이다.
‘오방 오제위도’는 6폭 병풍으로 구획된 공간에 용상에 앉은 오제를 도해하였다. 오제의 형식은 정형화되어 있으며 도상적인 차이가 거의 없다. 모두 정면을 향하고 있으며 두 발은 흑칠이 된 족좌(足座) 위에 올려놓은 자세로, 단지 착용하고 있는 복식의 색깔로 구분하였다. 제왕의 복식에 머리에는 붉은색의 해와 하얀색의 달이 도해된 관을 썼으며, 가슴 앞으로 모은 손에는 규(圭)를 잡고 정좌하였다. 왕이 들었을 경우는 규, 대부(大夫)나 사(士)와 같이 관위(官位)에 있는 사람이 임금을 알현할 때 쓰는 것은 홀(笏)이라고 한다.
의자의 우측 여백에는 오제의 명칭이 기록되었다. 녹색의 복식을 착용한 이는 ‘동방 태호지군(東方太皡之君)’, 적색은 ‘남방 염제지군(南方炎帝之君)’, 백색은 ‘서방 소호지군(西方少皥之君)’, 청색은 ‘북방 전욱지군(北方顓顼之君)’, 황색은 ‘중방 황제지군(中方黃帝之君)’으로 방위에 따른 오제의 명칭을 분명하게 나타내고자 하였다.
‘사직 사자도’는 말 앞에 서서 무기를 들고 있는 사자의 모습을 도해하였다. 도상적으로는 명부전에 걸리며, 두 폭으로 조성되는 직부 사자, 감재사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화면 우측 상단의 붉은 방제에는 이들이 각각 ‘연직 사자’, ‘월직 사자’, ‘일직 사자’, ‘시직 사자’임을 기록하였다. 화면 하단 중앙에는 화기가 기록되어 있다.
[특징]
바탕 재질은 비단과 마가 함께 사용되었다. 오방 오제위도 중 중방, 동방, 남방 제위도는 중앙에 비단을 대고 좌우에 마를 잇댄 화폭을 사용하였으며 서방, 북장 제위도와 사직 사자도는 마본에 그렸다. 오방 오제위도에 기입된 동방 태호지군, 남방 염제지군, 서방 소호지군, 북방 전욱지군, 중방 황제지군의 방제와 사직 사자도의 명칭은 수륙 의식집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천지 명양 수륙재의 범음 산보집(天地冥陽水陸齋儀梵音刪補集)』, 『수륙 무차 평등 재의 촬요(水陸無遮平等齋儀撮要)』 등에는 수륙재를 개최할 때 오로단(五路壇)을 마련하고 각 방위에 따른 제왕을 봉청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방위와 방위에 따른 오방색에 대한 인식은 불화로 제작되었을 때 차이가 확인된다. 예를 들면 『수설 수륙 대회소(修設水陸大會所)』의 오로소(五路疏) 등에는 북방을 다스리는 황제를 흑제로 보았으나, 개심사 오방 오제위도의 북방 전욱지군은 청색 복식을 착용한 청제로 표현되었다. 경전이나 의식집 같은 문헌을 참고하기보다는 기존에 제작된 불화를 모본으로 삼으면서 흑제의 고유한 의미를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개심사에는 서산 개심사 오방오제위도 및 사직사자도 외에 「서산 개심사 제석·범천도 및 팔금강·사위보살도」[보물 제1766호] 불화도 현존한다. 이 불화는 「개심사 영산회 괘불탱」[1772년 제작, 보물 제1264호]과 함께 조성되었다. 전각에 봉안되는 예배용 불화와 달리 의식 도량에 걸리는 불화는 의식이 끝나면 소각되거나 빈번한 수요로 다시 조성되기에 한 시기에 만들어진 불화가 일괄로 현존하는 사례가 드물다. 서산 개심사 오방오제위도 및 사직사자도는 개심사에 전하는 괘불을 비롯한 의식용 불화보다 한 세기 앞서 조성된 이른 작례로 조성 시기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의의와 평가]
서산 개심사 오방오제위도 및 사직사자도는 조선 시대 고혼(孤魂)을 위한 시식 의례(施食儀禮)에서 오로단과 사자단(使者壇)에 걸었던 불화이다. 오로단과 사자단에 걸기 위한 불화는 조선 시대 사오로탱(使五路幀)이라는 별칭으로 명명되었는데, 현존하는 사오로탱 중 개심사본은 조성 시기를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사례이다.
사찰에 전하는 소형 불화의 경우 그 본래의 기능보다는 도량을 불 세계(佛世界)로 꾸미고 장식하는 협의의 의미에 한정되어 인식되었으나, 불교 의식의 성행으로 새롭게 조성되는 불화에 대한 수요를 확인할 수 있다. 사오로탱으로 명명된 이 불화는 조선 후기까지 지속적으로 조성되었으나 19세기 이후 의례 변화를 통해 고유한 기능이 약화된다. 1826년 간행된 『작법 귀감(作法龜鑑)』에는 사직 사자와 오방 오제가 옹호 신중(擁護神衆)의 하나로 신중단(神衆壇)에 포섭되었다. 현대에 와서 오방 오제와 사직 사자의 조합은 잊히고 단순히 방위신이나 도량 장엄용 불화로 인식되는데, 이러한 변화는 불교 신앙 의례의 변화에서 기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