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
1900년 지금의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양안 작성을 위해 진행되었던 근대적 토지 조사 사업.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명에 의하여 1899년부터 1901년에 걸쳐 충청남도와 경기도의 실제 토지 측량 작업이 진행되었고, 양전(量田)에 토대한 양안(量案)[조세 부과를 목적으로 전지를 측량하여 만든 토지대장]이 만들어졌다. 지금의 경기도 시흥 지역은 당시 안산군과 인천부에 속해...
-
경기도 시흥시에서 행해지고 있는 우리나라 전통의 활쏘기 무예. 궁도(弓道)는 활을 이용하여 화살을 과녁에 맞히는 정확도를 겨루는 전통 무예로 근래에는 신체 단련과 정신 수양을 위하여 남녀노소 모두 즐기는 운동이다. 궁도 경기는 단체전과 개인전이 있으며 단체전은 시·도 대항전과 정(亭) 대항전으로 나뉘고 개인전은 성별·연령별로 나뉜다. 대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기본...
-
개항기부터 1945년 광복까지 경기도 시흥 지역의 역사. 개항 이래 조선은 외세의 개입과 수탈 속에서 쇠락해 갔다. 개화파가 주도한 갑오개혁(1894~1896)과 대한제국의 선포를 통해 서구의 근대 문물을 받아들여 자강 부흥을 노렸으나, 이미 기운 국운을 되돌리기 어려웠었다. 결국 1906년 통감부(統監府)가 설치되면서 조선 사회의 근대적 개혁은 일제에 의해 주도되었다. 당시 경기...
-
1894년 갑오개혁에서 1945년 광복까지 경기도 시흥시에서 이루어진 일반 대중 중심의 교육. 갑오개혁 이후 근대 대중 교육의 시대가 열렸다. 초기 근대 교육의 보급은 주로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1905년 교육 계몽 운동의 열기 속에서 경기도 시흥 지역에도 여러 사립학교가 설립되었다. 일제는 1906년 통감부(統監府) 설치 이후 애국적인 교육을 차단하는 식민지 교육을...
-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에 있는 대한적십자사 시흥 지역 사회봉사 단체. 대한적십자사 시흥지구협의회는 대한적십자사 조직법과 적십자의 인도주의 이념에 입각하여 시흥 지역에서 사랑과 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는 단체이다. 1965년 제20차 국제적십자회의에서는 인도(humanity), 공평(impartiality), 중립(neutrality), 독립(independence...
-
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에 있는 기독교 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무지내교회는 기독교 대한감리회 중부연회 시흥북지방 소속으로 일제강점기에 설립되어 경기도 시흥과 안산·수원 지역, 충청남도 공주 지역으로 교리를 전파한 교회이다. 1901년 5월 아담한 예배당을 신축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봉헌 이듬해인 1902년 6월 선교사 아펜젤러(Henry G. Appenzel...
-
경기도 시흥시 미산동에 있는 기독교 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대한제국 시기인 1900년에 처음 설립된 미산교회는 12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전통 있는 교회이다. 작은 음악회와 사랑의 국수 접대 등을 통해 지역민과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 미산교회는 경기도 시흥시 미산동 지역에서 기독교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미산교회는 1900...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기도 시흥시의 역사.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는 조선시대 안산군(安山郡)과 인천부(仁川府)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군자·수암권은 안산군의 잉화면(仍火面), 초산면(草山面), 마유면(馬遊面), 대월면(大月面)에 해당한다. 소래권은 인천부의 신현면(新峴面), 전반면(田反面), 황등천면(黃等川面)에 해당한다. 시흥 지역은 조선시대에...
-
1910년대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토지 소유권과 지세 액수 확정, 지적도 작성을 목적으로 일제에 의해 진행된 사업. 일제는 식민 지배의 물적 기반인 토지를 정확히 파악하여 통제하기 위해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전부터 전국의 토지를 조사하는 사업을 강행하였다. 경기도 시흥 지역의 경우 1910년 지주들로부터 토지 신고서를 접수하였고, 1911년 국유지 통지를 거쳐 1914년...
-
1907년부터 국권 회복을 위해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전개한 항일 무장 투쟁. 1907년 8월 대한제국 군대 해산을 계기로 시흥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 서부 지역의 의병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의병들은 일제의 탄압 기구인 순사 주재소를 습격하고, 일진회원(一進會員)을 위시한 친일파를 처단하였으며, 부자들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을 마련하였다. 1909년까지 소규모 유격전 형태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