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
경기도 시흥시 장곡동 안골에 살았던 장유와 담배에 관한 이야기. 조선 제16대 왕 인조 때의 명신(名臣) 장유(張維)[1587~1638]와 담배에 관한 것이다. 애연가였던 장유는 담배라는 이름을 처음 지었으며, 담배를 피우면 안 되는 사람이나 상황을 아홉 가지로 제시하였다. 「담배를 좋아한 장유 선생」 이야기는 1995년 시흥시에서 편찬한 『시흥의...
-
경기도 시흥 지역이었던 조선시대 안산군 관아에서 연지기의 면역을 재확인해 주기 위해 발급한 증명서. 완문(完文)은 관청에서 공증해 주는 문서로서 주로 사실 확인이나 권리 인정 등을 위한 일종의 확인서이다. 관곡지는 조선 세조 때 강희맹(姜希孟)이 경기도 안산군[지금의 시흥시 하중동 208]에 조성한 연못으로 1986년 3월 3일 시흥시 향토유적 제8호로 지정·...
-
경기도 시흥 지역이었던 조선시대 안산군의 군수가 경기도관찰사에 올린 원장의 첨부 문서. 서목(書目)은 하관이 상관에게 올리는 보고서인 원장(原狀)[보첩 등]에 첨부되는 문서로서 주로 원장(原狀)의 요지로 되어 있다. 대체로 상관의 처분 후에 원장은 상관이 보관하고, 서목은 하관에게 되돌려주었다. 작성자는 권용정(權用正)[1801~1861]이다. 관곡지는 조선...
-
경기도 시흥 지역이었던 조선시대 안산군 내 관곡지 준설에 관하여 권씨 가문에 전해지는 문서. 「연지준지기(蓮池浚池記)」는1900년(대한제국 광무 4) 5월 관곡지(官谷池) 준설에 관한 사안을 자손들이 알 수 있도록 권태선(權泰善)이 기록한 것이다. 관곡지는 조선 세조 때 강희맹(姜希孟)이 경기도 안산군[지금의 시흥시 하중동 208]에 조성한 연못으로...
-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1797년 8월 행차[행행]에서 시흥 지역의 경치를 노래하고 인재를 찾는 심경을 읊은 시. 「풍기렵렵해문회(風旂獵獵海門廻)」는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지은 칠언시(七言詩)로 “바람 깃발 휘날리며 해문을 돌아오니”라는 첫 구절로 시작된다. 정조의 이름은 산(祘)이고, 자는 형운(亨運), 호는 홍재(弘齋)이다. 할아버지는 영조이고, 아버...
-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소래산 아래에 있는 하연 선생 묘와 뱀내장에 관한 이야기. 일제강점기 당시 부천군 소래면 면장의 꿈에 조선 제4대 왕 세종 때 정승을 지낸 하연(河演)[1376~1453]이 나타나 소시장[우시장]이 자신의 묘 근처에 생겨 시끄럽다고 하여 소래면사무소 앞으로 이장하였다는 이야기이다. 「하연 묘를 옮기게 된 사연」은 2004년 시흥시와 한양대...
-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배나무에 있는 원씨 가문 산소에 얽힌 이야기. 원씨 일가의 조상인 원성모(元成模)[1569~1636]가 덕물도(德勿島)[지금의 옥구도]에서 활을 쏘자 배나루 산 중턱까지 날아와 화살이 떨어진 곳에 묘를 쓰니 집안이 번성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활을 쏘아 명당터를 맞힌 원씨 가문」 이야기는 1988년 시흥군에서 편찬한 『시흥군지』, 20...
-
경기도 시흥시 일대가 포함된 18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도. 『여지도(輿地圖)』는 지도에 포함된 지명으로 미루어 1757년(영조 33) 이후부터 1766년(영조 52) 사이에 제작된 지도로 추정된다. 지도의 전반적인 양식은 18세기에 그려진 정상기(鄭尙驥)의 『동국지도(東國地圖)』와 다르게 전통적인 특성이 강한 회화식 필사본이다. 지도의 표현 기...
-
경기도 시흥 지역인 조선시대 안산군의 군수가 관곡지를 재정비하고 관련된 사항을 기록한 문서. 『연지사적(蓮池事蹟)』은 1846년(헌종 12) 안산군수 권용정(權用正)이 관곡지를 재정비하고 이러한 사항을 기록한 필사본 성책 고문서[여러 장의 문서를 책의 형태로 엮은 고문서]이다. 관곡지의 유래와 재정비 및 관리를 위한 연지기 배치 등에 대한 사항이 상세히 기록되...
-
경기도 시흥에 거주한 정제두가 죽음을 예견하고 자녀에게 남긴 교훈집. 정제두(鄭齊斗)[1646~1736]는 자신의 학술 종지(宗旨)가 양명학에 있음을 『임술유교(壬戌遺敎)』에 천명(闡明)하였다. 『임술유교』는 『하곡집(荷谷集)』 22책본 중 정집(正集)에 속하며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22책본에는 결여되어 있는 것이지만, 다른 서울대학교 소장본 11책본 등을 참...
-
1911년 조선총독부에서 경기도 시흥시의 전신인 인천부와 안산군의 지리 정보를 작성한 자료. 『조선 지지 자료(朝鮮地誌資料)』는 1911년 일제가 우리나라에 대한 식민 통치를 위해 전국의 지명과 지지(地誌) 사항을 일본식으로 바꿔 기록한 것이다. 필사본으로 전해지며, 편찬자를 비롯하여 편찬 시기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1910년경의 조선 지명을 정리하여 편찬한 것으로 추...
-
경기도 시흥 지역에 거주하던 정제두가 우리나라 양명학의 체계에 관해 저술한 책. 『존언』은 정제두(鄭齊斗)[1646~1736]의 문집 『하곡집(荷谷集)』 22책본 중 정집(正集) 권9에 해당한다. 『학변』이 주일적(主一的) 심성학을 바탕으로 물리(物理)의 학(學)을 비판한 것이라면 『존언』은 체계적으로 심성학을 정리한 저술이다.『하곡집』 22책본은 제1책에서...
-
경기도 시흥 지역에 거주하던 정제두가 저술한 『하곡집』 22책본 중 정집 권8에 해당하는 양명학 논변서. 『학변(學辨)』은 경기도 안산군 잉화면 화정리[지금의 시흥시 화정동]에 거주하던 정제두(鄭齊斗)[1646~1736]가 저술한 『하곡집(荷谷集)』 22책본 중 정집(正集)에 속하며 정주학(程朱學)의 지리하고 번잡한 학문 태도를 비판한 양명학 논변(論辯)이다....
-
1750년대에 제작된 『해동지도』에서 경기도 시흥시를 포함하는 지도. 『해동지도』는 1750년대 영조 대에 홍문관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후기의 회화식 지도이다. 각 군현 지도에 주기(註記)를 첨부하였으며, 국가 차원에서 제작하여 정책적 목적에 사용되었다. 지도는 채색 필사본으로 제작되었으며, 조선 전도를 비롯하여 도별도, 군현 지도, 세계 지도 등을 포함하고...
-
19세기 후반 우리나라를 그린 『해좌승람』에서 경기도 시흥시가 포함된 지도. 『해좌승람(海左勝覽)』은 조선 팔도를 그린 지도로 각 군현의 명칭과 산 이름 중심으로 간략하게 제작되었다. 『해좌승람』 「경기도」는 조선 팔도를 그린 채색 필사본 지도첩의 경기도 부분으로 크기는 가로 28.8㎝, 세로 30.6㎝이다. 2018년 현재 영남대학교 박물관이...
-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1797년 8월 15일부터 19일까지 지금의 시흥을 경유해 화성 현륭원으로 간 행행. 정조는 억울하게 죽은 부친 사도세자의 추존(追尊)을 위해 노력하였다. 1789년(정조 13) 사도세자 묘를 수원으로 이장해 현륭원(顯隆園)을 만들고 화성(華城)을 건설하였다. 그리고 11년간 총 13번의 원행(園幸)을 하였는데, 이 중 10차 원행인...
-
1919년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이 경기도 시흥 지역으로 전해져, 1919년 3월 하순에서 4월 초순까지 일제에 맞서 지역민들이 향촌의 전통 리 조직을 통해 일제의 무단 통치(武斷政治)를 반대하며 하부 통치 기구인 면사무소와 경찰관 주재소로 몰려가 독립운동을 벌였다. 소래산·대부도의 대몽 항쟁(對蒙抗爭)과 하우명(...
-
경기도 시흥시에서 육지에 면한 바다나 갯벌의 일부를 둑으로 막고 그 안의 물을 빼내 육지로 만든 사업. 우리나라의 서해안은 해수면이 낮거나 간석지의 발달이 탁월하여 오래전부터 간척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서해안에 자리한 경기도 시흥시에서도 일찍부터 간척 사업을 실시하였으며 새롭게 육지로 만들어진 땅에는 공업단지·주택단지·시가지·농경지 등을 조성하였다. 시흥시에는 1...
-
경기도 시흥 지역이 속해 있던 옛 시흥군 군자면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강은식(姜殷植)[1885~?]은 경기도 시흥군 군자면 원곡리[지금의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출신으로 1919년 4월 4일 군자면 3.1운동을 주도하고 일제로부터 피체(被逮)되어 옥고를 치렀다.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강은식은 시흥군 군자면 원곡리 출신...
-
경기도 시흥시 관곡지에 연꽃을 심은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경순(景醇), 호는 사숙재(私淑齋), 운송거사(雲松居士), 국오(菊塢), 만송강(萬松岡). 강희맹(姜希孟)[1424~1483]의 증조할아버지는 강시(姜蓍), 할아버지는 동북면 순무사(東北面巡撫使) 강회백(姜淮伯), 아버지는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강석덕(姜碩德), 어머니는 영의정 심온(沈溫...
-
왕건을 1세로 하고, 왕미를 중시조로 하는 경기도 시흥 지역의 세거 성씨. 경기도 개성[송악] 지방의 호족 집안으로 고려를 건국하여 34대 475년간 번성하였다. 하지만 조선을 창업한 이성계(李成桂)의 정치적 보복으로 멸족의 참화를 겪었다. 그리하여 전(全), 옥(玉), 전(田), 금(琴) 씨 등의 성씨로 바꾸어 지내다가 한참을 지나서 왕씨로 복성(復姓) 되었...
-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법정동. 거모동은 시흥시 중동부에 있는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군자동에서 관할한다. 거모동은 바닷가에 있는 마을로 넓은 들이었는데, '들'이 '틀'로 변하였다가 '털'로 되어 한자로 표기한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또한 “지형이 거머리처럼 생겨 거머리 또는 거모리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종합적으로 ‘검은 갯마을’이란 의미로...
-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에 있는 영응대군을 모시는 재실. 경효재(敬孝齋)는 조선 세종의 8남 영응대군(永膺大君)[1426~1467]의 재실로 시호(諡號)인 경효(敬孝)를 취해 명명하였다. 영응대군의 휘(諱)는 염(琰)이다. 1441년(세종 23) 영응대군으로 봉해졌다가 1443년(세종 25) 역양대군(歷陽大君)으로, 1447년(세종 29) 다시 영응대군으로 개봉(...
-
경기도 시흥시 하중동에 있는 조선 세조 때 조성된 연못. 관곡지(官谷池)는 경기도 시흥시 하중동에 있는 연못으로 조선 세조 때 강희맹(姜希孟)이 명나라 난징[남경(南京)]에서 가져온 연꽃을 심어 현재에 이르렀다. 이를 계기로 조선시대 시흥 지역이었던 안산군의 별호를 ‘연성(蓮城)’으로 부르게 되었다. 시흥시 하중동은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안산군 초산면...
-
경기도 시흥시 광석동과 산현동에 걸쳐 있는 산. 관모산(冠帽山)은 높이 162m의 산으로 경기도 시흥시의 자연 마을인 광석동의 사티골과 나분들, 산현동의 골월과 사티골, 능곡동의 목실과 능골 등에 걸쳐 있는 산이다. 능선의 낮은 부분에 고개를 만들어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비교적 규모가 큰 산이다. 흥부저수지[물왕저수지] 제방 남쪽에 있는 ‘골월’이...
-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애국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학교 설립과 근대 서양 문물 교육 운동. 국권 상실의 시기인 1905년부터 1910년까지 전국적으로 벌어진 교육 계몽 운동의 영향으로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에서도 여러 학교가 설립되었다. 1906년 정윤영(鄭允永)이 세운 학교를 필두로 1908년 창흥측량학교(昌興測量學校)가 설립되었으며, 흥인의숙(興仁義塾)과 진명의숙...
-
경기도 시흥시 군자봉에 남아 있는 성황 신앙의 터. 성황(城隍)의 성(城)은 성벽을 뜻하고, 황(隍)은 방어를 위해 성벽을 둘러싼 도랑을 뜻한다. 즉, 성황은 성벽과 도랑으로 둘러싸인 도시라는 의미이며 성황 신앙이란 성곽 도시의 수호신에 대한 신앙 체계라 할 수 있다. 성황 신앙이 수용된 것은 신라 말에서 고려 초 무렵으로 생각된다. 이때는 전란의 시기였던 만큼 지역 수...
-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군자동은 시흥시의 서남부에 있는 행정동이자 법정동으로 법정동인 거모동을 관할한다. 군자동은 마을 인근에 유명한 군자산이 있어 군자리로 칭하다가 군자동으로 되었다. 군자산의 명칭 유래는 조선 제6대 왕 단종이 안산군 와리면 목내리[지금의 안산시 목내동]에 있는 어머니 묘소에 가는 길에 이 산을 보고 마치 연꽃처...
-
경기도 시흥시 지역이 속해 있던 옛 시흥군 군자면에서 1919년 3월에 일어난 독립 만세운동. 군자면 3.1운동은 일제에 맞서 지역민들이 향촌의 전통 리(里) 조직을 통해 일제의 무단통치(武斷統治)를 반대하며 군자면사무소와 거모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가 펼친 항일 독립 만세운동으로, 시흥 지역의 대표적인 민족 광복운동이다. 시흥군 군자면은...
-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장현동·능곡동에 걸쳐 있는 산. 군자봉에는 ‘세 자 세 치가 깎인’ 전설이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유씨 집안의 여종 하나가 주인으로부터 벌을 받아 숨을 거두었다. 죽은 여종의 아들이 금강산으로 들어가 스님에게 풍수를 배우다가 스님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풍수에 조예가 깊은 스님이 마을에 왔다는 소식에 유씨 집안에서 그를 불러 가문의...
-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군자봉의 다양한 문화유산과 자연 마을 이야기. 경상북도 경주시에 남산이 있다면 경기도 시흥시에는 군자봉이 있다. 군자봉은 행정구역상 시흥시 군자동과 장현동, 능곡동 사이에 자리한 높이 198.4m의 봉우리이다. 정확히 방어 시설인지 봉수대의 흔적인지 단언할 수 없으나, 군자봉에는 방어 시설로 보이는 흔적과 각종 토기류나 석축 잔해가 발견되...
-
경기도 시흥 지역이 속해 있던 옛 시흥군 군자면의 구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권희(權憘)[1900~1955]는 1919년 4월 7일 군자면 구 장터 만세운동을 모의하다 일제로부터 피체(被逮)되어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본관은 안동(安東). 경기도 안산군 마유면 장상리 안두일[지금의 시흥시 장현동]에서 대대로 세거한...
-
1920년대부터 경기도 시흥 지역을 상징했던 군자염전과 소래염전의 흥망성쇠.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경기도 시흥의 군자염전과 소래염전은 양질의 소금 산지로 각광을 받았다. 광복 후에도 전국 소금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 군자염전과 소래염전은 시흥 지역을 상징하는 장소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천일염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고, 도시의 팽창 욕구가 커지면서 결국 시흥 지역의 염전은...
-
개항기부터 1945년 광복까지 경기도 시흥 지역의 역사. 개항 이래 조선은 외세의 개입과 수탈 속에서 쇠락해 갔다. 개화파가 주도한 갑오개혁(1894~1896)과 대한제국의 선포를 통해 서구의 근대 문물을 받아들여 자강 부흥을 노렸으나, 이미 기운 국운을 되돌리기 어려웠었다. 결국 1906년 통감부(統監府)가 설치되면서 조선 사회의 근대적 개혁은 일제에 의해 주도되었다. 당시 경기...
-
1894년 갑오개혁에서 1945년 광복까지 경기도 시흥시에서 이루어진 일반 대중 중심의 교육. 갑오개혁 이후 근대 대중 교육의 시대가 열렸다. 초기 근대 교육의 보급은 주로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1905년 교육 계몽 운동의 열기 속에서 경기도 시흥 지역에도 여러 사립학교가 설립되었다. 일제는 1906년 통감부(統監府) 설치 이후 애국적인 교육을 차단하는 식민지 교육을...
-
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에서 출생한 일제강점기 종교인이자 교육자.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지석(芝石)·교원(敎源). 경기도 부천군 소래면 무지리 438[지금의 시흥시 무지내동 428]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김용수(金龍洙), 어머니는 이씨(李氏)이다. 아들은 민선 인천시장과 국회의원을 역임한 김정렬(金正烈)이고, 사촌형은 시흥시 관내 최초의 기독교인 김동현(金東賢)이...
-
경기도 시흥시 하상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김성동의 묘. 김성동(金誠童)[1452~1495] 묘는 조선 제10대 왕 연산군 때 우의정을 지낸 강귀손(姜龜孫) 묘의 좌측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묘 아래에는 차남 김려(金濾)의 묘가 있고, 그 아래 구릉에 현손(玄孫) 김이경(金以鏡)의 묘가 있다. 김성동은 성종 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명...
-
경기도 시흥 지역이 속해 있던 옛 시흥군 군자면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김천복(金千福)[1897~1968]은 시흥군 군자면 죽율리 출신으로 1919년 4월 4일 군자면 3.1운동을 주도하고 일제로부터 피체(被逮)되어 옥고를 치렀다.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본관은 금녕(金寧). 대사헌공파(大司憲公派) 24세손으로 입향조인 17세손 김...
-
‘소래(蘇萊)’라는 명칭은 인천광역시, 부천시, 시흥시에서 모두 사용되고 있지만 시흥시에는 소래산을 비롯해 소래염전, 소래산 편사 놀이, 소래문학회, 소래초등학교 등 시흥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 속에 ‘소래’라는 이름을 많이 사용하고 있어 다른 지역에 비해 ‘소래’에 대한 지역민의 애정과 애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행정구역상 소래산은 현재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수동과 시흥시 대야동...
-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능곡동은 시흥시의 중남부에 있는 행정동이자 법정동으로 법정동인 화정동을 관할한다. 능곡동은 능터가 있던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조선 제5대 왕 문종의 비이자 단종의 생모인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묘를 이 마을에 쓰려다가 지금의 안산시 목내동 능안에 예장하였는데, 그 후부터 능터를 잡았던 곳이라 하여...
-
경기도 시흥시 능곡동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을 잇는 도로.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을 기점으로 하여 경기도 시흥시 능곡동에 이르는 도로이다. 시흥시 능곡지구의 중앙을 종점으로 하고 있다. 능곡로는 도로의 종점인 능곡동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였다. 능곡동은 조선 문종의 비인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묘를 이 마을에 쓰려다 능을 쓰기에 협소하다 하...
-
고려시대 시흥 지역에서 이루어진 몽고군과의 전쟁. 대몽 항쟁(對蒙抗爭)은 1231년(고종 18)부터 1259년(고종 46)까지 9차례에 걸친 몽골의 고려 침입으로 촉발된 전쟁으로 항몽 전쟁, 여몽 전쟁 등으로도 불리며 한반도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전쟁이다. 고려시대 대몽 항쟁 중 시흥 지역과 관련이 있는 시기는 몽골군의 6차 침입기인 1256년(고종 43)이고,...
-
현재의 경기도 시흥시 거모동 일부 지역을 관할하였던 조선시대 행정구역. 대월면은 조선 후기 안산군에 속해 있다가 1914년 시흥군 군자면으로 통합되면서 일부 지역이 경기도 시흥시에 속하게 되었다. 조선 후기 영조 때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군내면, 잉화면, 와리면, 마유면, 초산면과 함께 대월면이 언급되어 있다. 조선 영조 때 정상기(鄭尙驥)[1678~1752...
-
고려 충렬왕 때의 장순룡을 시조로 하고, 황해도 개풍군 덕수현을 본향으로 하는 경기도 시흥 지역의 세거 성씨. 장순룡(張舜龍)은 위구르계 사람으로 충렬왕 때 고려에 귀화해서 첨의참리(僉議參理),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등의 벼슬을 지내고 덕성부원군(德城府院君)에 봉해진 인물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6세기 이후에는 장운익(張雲翼), 장유(張維), 장신(張紳)...
-
경기도 시흥시 거모동에 있는 조선의 제16대 왕 인조의 장인 한준겸의 사당. 문익사(文翼祠)는 1999년 시흥시 거모동에 세워진 서평부원군(西平府院君) 한준겸(韓浚謙)[1557~1627]의 사당(祠堂)으로, 문익(文翼)은 한준겸의 시호(諡號)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한준겸은 본관이 청주(淸州)이고, 자는 익지(益之)이며 호는 유천(柳川)이다. 정선군수 한승원(...
-
류차달을 시조로 하고, 황해도 신천군 문화면을 본향으로 하는 경기도 시흥 지역의 세거 성씨. 시조(始祖) 류차달(柳車達)의 7세인 문간공(文簡公) 류공권(柳公權)의 두 아들인 류언침(柳彦琛)과 류택(柳澤)으로부터 크게 두 계파가 생겨서 현재 문화 류씨(文化柳氏)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그 후 고려와 조선 시대에 걸쳐 많은 인물이 증시(贈諡)에서 시호를 내려받고, 대...
-
시흥시 북쪽의 소래산과 서남쪽의 군자봉 사이로 흐르는 은행천과 보통천이 서해로 흘러 들어가는데, 이 두 하천에서 운반되어온 퇴적물이 매화동, 은행동, 미산동, 도창동, 하상동, 하중동 일대에 약 150만 평[약 5㎢]의 커다란 벌판을 형성해 놓았다. 조선시대에 간석지[개펄]였던 이곳에 서해의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호조방죽을 축조하여 농경지로 활용하였는데, 그 들판이...
-
박응주를 시조로 하고,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을 본향으로 하는 경기도 시흥 지역의 세거 성씨. 반남 박씨(潘南朴氏) 가문은 고려 말엽부터 두각을 나타내다가 박응주(朴應珠)의 6세 박은(朴訔)이 조선 건국의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금천부원군(錦川府院君)에 책봉되면서 융성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조에 걸쳐 과거 급제자 219명, 정승 7명, 대제학 2명, 왕비 2명[...
-
경기도 시흥시 호조벌 방죽 일대에서 1895년 무렵 이루어진 개신교의 선교 과정. 1880년대 조선 선교에 나선 미국 감리회는 시흥 지역 호조벌 방죽 주변을 의미하는 '방죽뫼' 지역을 중요 선교 거점으로 보고 적극적인 농촌 선교에 나섰다. 1895년 무렵에는 교인이 되기 위해 학습하는 사람이 12명이었다. 1901년 김동현[1869~1928]에 의해 시흥 지역 최초 개신...
-
경기도 시흥시 조남동에 있는 법련사의 터. 법련사지(法蓮寺址)는 옛 절터로서 시흥시 조남동에 있다. 법련사는 조선 제17대 왕 효종의 비 인선왕후(仁宣王后)가 아버지 장유(張維)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웠다. 최근의 지표 조사에 따르면 절터 지점에 유물과 건물의 흔적이 발견되어 원래 절터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실정이다. 법련사는 1650년(효종 17)...
-
경기도 시흥시에서 보호수로 지정한 나무. 보호수(保護樹)는 보존 가치가 있는 수목, 노목, 희귀목 등을 지정한 것이다. 시흥시에서 보호수로 지정한 나무는 주로 수령이 많은 나무인데, 시흥시 지정 보호수 중 가장 짧은 수령의 나무가 200여 년이며 길게는 1,000년 이상 된 고목이다. 2017년 현재 시흥시에서 보호수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는 보호수는 6종 13본이다. 수...
-
조선시대 시흥 지역의 문벌이 높은 집안 또는 그 자손. 지금의 시흥시는 조선시대 인천부와 안산군에 속해 있었는데, 전통적으로 왕도의 직할지로서 중앙 정계에서 활동하던 유력 정치 세력의 재향(在鄕) 기반이기도 하였다. 경기 지역의 사족(士族)들은 향촌에 세거의 터전을 마련하여 거주하다가 관직으로 현달(顯達)하면 생활 기반을 한양으로 옮겨갔다. 그러면서도 향촌에 존재한 그들의 선영(先...
-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는 조선시대 인천과 안산에 속해 있었다. 조선 초기 인천에는 이(李)·공(貢)·하(河)·채(蔡)·전(全)·문(門)의 토착 성씨가 있었고, 내성(來姓)으로 박(朴)이 있었으며, 망성(亡姓)으로 최(崔)가 있었다. 안산에는 김(金)·안(安)·방(方)의 토착 성씨와 망성으로 임(林)이 있었다. 이들 토성 중 안산의 안산 김씨(安山金氏)를 제외한 대부분의 성씨가 조선...
-
경기도 시흥 지역에 영향을 주었던 조선시대의 소금 수취 제도. 소금은 식생활의 필수품이자 국가의 중요한 세금원이었다. 국가에서는 일찍부터 소금으로부터 얻어지는 이익을 국가 재정으로 활용하려는 정책을 시도하였다. 이는 중국 한나라 때부터 시행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관련 언급이 있었지만, 정책으로 기록에 담기 시작한 때는 고려시대부터이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의 소...
-
경기도 시흥 지역의 소래공립보통학교에서 윤복동 교사가 일본 메이지 천황의 교육칙어를 감춘 사건. 1932년 4월 부천군 소래면 신천리 소래공립보통학교에서 일제 메이지 천황[明治天皇]의 상징처럼 귀중하게 보관되던 교육칙어(敎育勅語) 등본이 사라졌는데 그 사실을 며칠 후 알게 되었다. 경찰이 나서서 고강도 수사를 벌인 끝에 31세의 윤복동(尹福同) 교사가 자백하였다. 윤복동...
-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과 신천동,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수동에 걸쳐 있는 산. 소래산은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과 신천동에 걸쳐 있으며,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수동과 경계하고 있다. 시흥시 산세의 주맥은 소래산에서 발원한다. 조선시대 인천도호부의 진산(鎭山)이기도 했던 소래산에 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소래산은 부 동쪽 24리[9.4㎞] 되는...
-
경기도 시흥시 소래산에 있는 산림욕을 할 수 있도록 조성한 산림. 소래산의 ‘소래(蘇萊)’란 지명은 지형이 소라처럼 생겼다는 설과 냇가에 숲이 많아 솔내[松川]라는 단어에서 유래하였다는 설 등이 있다. 소래산은 높이 299.4m의 산으로, 인근의 인천광역시·경기도 부천시 시민들도 즐겨 찾을 만큼 자연 경관이 빼어난 산으로 꼽힌다. 경기도 시흥시는 1...
-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하연을 모시는 사당. 소산서원(蘇山書院)은 조선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하연(河演)[1376~1453]의 재실이다. 소산(蘇山)이란 소래산(蘇萊山)을 의미한다. 하연의 본관은 진양(晉陽)이며 자는 연량(淵亮), 호는 경재(敬齋)·신희옹(新稀翁)이다. 하연은 정몽주(鄭夢周)의 제자로 1396년(태조 5) 문과에 급제한...
-
경기도 시흥시의 행정동 명칭과 자연 마을의 이름에는 낯설지만 정겨운 순우리말의 뜻과 함께 마을의 역사와 인물, 자연환경의 특색 등을 내포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도시 개발 과정에서 자연 마을이 사라지고 있지만, 마을을 부르던 이름만은 남아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짐작하게 해주고 있다. 신천동은 신촌(新村)의 앞 글자 신(新), 사천(蛇川)의 뒷 글자 천(川)을...
-
경기도 시흥시에서 선정한 경관이 아름다운 아홉 곳의 명소. 시흥 9경은 시흥시를 대표하는 섬, 산, 공원, 저수지 등 9개의 아름다운 경관을 전국에 널리 알리기 위하여 선정한 명소를 말한다. 제1경은 오이도낙조(烏耳島落照)[오이도에서 바라보는 낙조]이다. 오이도는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으로, 원래는 섬이었으나 매립하여 육지와 연결되었다. 2005년 이후...
-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는 지리적으로 조선시대 인천부(仁川府)와 안산군(安山郡)에 속해 있었던 반면, 조선시대의 시흥은 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 일원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었다. ‘시흥’ 하면 떠오르는 곳이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이나 시흥행궁(始興行宮), 시흥사거리를 떠올리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러다가 1914년 안산군에 속해 있던 군자면·수암면 지역이 시흥군에 편입되고,...
-
1945년 광복 직후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조직하여 활동하였던 민간 자치 기구. 일제 패망 직후 지방 행정 업무를 담당할 기구가 필요하였다. 당시 시흥 지역에서도 1945년 9월경 인민위원회가 조직되어 행정과 치안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일제의 시흥군 청사를 접수할 정도로 활발히 활동하였던 시흥군인민위원회는 1945년 말 미군정이 불법화하면서 공식적인 업무를 할 수 없게 되었다....
-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 군자봉 신목 아래에서 지역 성황신을 받들어 거행하는 민간 의례. 시흥 군자봉 성황제는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김부(金傅)라고도 함. ?~979]과 안씨 부인, 그리고 안씨 부인의 어머니인 홍씨 마님을 성황신으로 여기고, 군자봉 정상의 느티나무 서낭을 신목(神木)으로 삼아 시흥시 군자동 구지정[일명 구준물] 일대의...
-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신천동은 경기도 시흥시 북서부에 있는 행정동이자 법정동으로 따로 관할하는 법정동은 없다. 신천동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인천부 신현면의 신촌리(新村里)와 사천리(蛇川里)에서 각 한 글자씩 따서 ‘신천리’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 사천은 하천의 모양이 뱀처럼 구불구불하여 얻은 이름이다. 신천동...
-
외국인 선교사들이 선교의 방편으로 시작한 시흥의 근대식 교육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교육이라는 굴절을 겪으면서도 광복 이후 양적·질적으로 팽창해 왔다. 시흥시 교육의 발전은 시흥 사람들의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가능했지만, 시흥시의 근현대 교육은 교육 공급이 교육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시흥시 교육의 발전에 대한 자부심 못지않게 앞으로도 풀어가야 할 숙제를 안고...
-
조선시대 경기도 시흥 지역에 있었던 물살을 조정하여 물고기를 잡도록 한 어로 도구 혹은 그것이 설치된 장소. 어량(魚梁, 漁梁)은 물이 흐르는 곳에 물살을 제한하여 그곳에 함정 어구(漁具)를 놓아 고기를 잡도록 한 곳을 일컫는다. 어량은 어구를 설치한 모양이 교량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성종 때부터는 어량보다는 어전(漁箭)이라는 명칭이 실록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다. 이...
-
민칭도를 시조로 하고, 경기도 여주시 여흥동을 본향으로 하는 경기도 시흥 지역의 세거 성씨. 민칭도(閔稱道)의 4세손인 민영모(閔令謨)부터 고위 관직에 진출하였고, 고려시대 형부상서(刑部尙書)를 지낸 민영모의 장남 민식(閔湜)과 태자소보(太子少保)를 지낸 차남 민공규(閔公珪)의 후손이 여흥 민씨(驪興閔氏) 가문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 고려와 조선에 걸쳐 많은...
-
경기도 시흥시 하중동에 있는 연꽃 풍경 감상 등을 위해 조성한 공원. 연꽃테마파크는 시흥시 하중동 관곡지(官谷池) 일대에 연꽃 풍경 감상 등을 위해 조성한 공원이다. 또한 공원 일대에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를 만들어 시민들이 즐겨 찾을 수 있도록 하였다. 연꽃은 7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하여 8월 중순에서 하순경에 절정을 이루며, 9월 중순부터 하순까지 감상할 수...
-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과거 전통 시대에 소금을 생산하던 장소. 소금은 현재도 마찬가지이지만 과거에도 사람들의 생활 필수품이었다. 그 소금을 생산하던 곳을 옛날에는 염소(鹽所)라고 하였다. 전통 시대에 소금은 그 생산과 유통을 통제할 때 생기는 이득이 국가 재정에 큰 기여를 해왔기 때문에 국가는 일찍부터 소금의 생산과 조달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중국에서는 이미 기원...
-
경기도 시흥시 능곡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류자신의 재실. 영모재(永慕齋)는 조선 제15대 왕 광해군의 장인인 류자신(柳自新)의 재실(齋室)로 시흥시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다. 류자신은 본관이 문화(文化)이며 자는 지언(止彦)이다. 1564년(명종 14) 진사시에 입격(入格)한 후 태릉참봉(泰陵參奉)이 되었고, 1579년(선조 12) 형조정랑(刑曹正郞)...
-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에 있는 윤섭과 윤지완의 위패를 모신 사당. 영평사(鈴平祠)는 조선의 제9대 왕 성종의 부마(駙馬)였던 영평위(鈴平尉) 윤섭(尹燮)[1492~1516]과 제19대 왕 숙종 때 우의정을 지낸 충정공(忠正公) 윤지완(尹趾完)[1635~1718]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윤섭은 본관이 파평(坡平)이며 자는 화숙(和淑)이다. 사복시정(司僕寺正)을...
-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 있는 섬이었던 지역. 오이도(烏耳島)는 원래 지금의 시흥시 앞바다에 있던 섬이었지만, 1920년대부터 시작된 염전 조성과 1980년대의 시화국가산업단지 개발 사업 등으로 간척 및 매립이 이루어져 육지에 연결되었다. 매립 사업 이후 해안가에는 오이도해양단지가 조성되었다. 오이도는 서해안의 돌출부에 자리하므로 조선시대에 정왕산 봉...
-
경기도 시흥시에서 공자를 시조로 하는 전통적인 사상을 중심으로 한 학문 또는 종교. 유교란 유학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부르는 말로, 공자(孔子)를 시조(始祖)로 하는 중국의 대표적 사상이며 공교(孔敎) 또는 공자교(孔子敎)라고도 부른다.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 제가(諸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 경...
-
경기도 시흥 지역이 속해 있던 옛 시흥군 수암면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윤병소(尹秉召)[1893~1919]는 1919년 당시 시흥군 수암면 능곡리[지금의 시흥시 능곡동]에 거주하였다. 3월 30일 수암면 비석거리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일제로부터 피체(被逮)되어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고인의 업적을 기려 1968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고 1990년...
-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윤엄의 묘. 윤엄(尹儼)[1536~1581]은 선조 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사숙(思叔), 호는 송암(松巖)이다. 윤승유(尹承柳)의 증손(曾孫)으로 할아버지는 영평위(鈴平尉) 윤섭(尹燮)이고, 아버지는 윤지함(尹之諴)이다. 아들 윤민헌(尹民獻)과 윤민일(尹民逸)은 성혼(成渾)의 제자이다. 승문원정자...
-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는 민족 광복 운동사에 중요한 사건인 3.1운동이 3월 말에서 4월 초까지 수암면과 군자면 일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3.1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독립운동가들은 일제의 무단통치(武斷統治)에 맞서 지역민을 조직하여 하부 통치 기구인 면사무소와 경찰관 주재소에 몰려가 만세 운동을 펼쳤다. 그 과정에서 수암면의 유익수, 윤병소, 홍순칠, 윤동욱, 김병...
-
경기도 시흥시 장곡동 안골에서 출생한 조선 제17대 왕 효종의 비. 본관은 덕수(德水), 시호는 인선(仁宣). 증조할아버지는 목천현감 장일(張逸), 할아버지는 형조판서 장운익(張雲翼), 아버지는 우의정 장유(張維), 어머니는 안동 김씨(安東金氏)로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의 딸이다. 조선 17대 효종의 왕비이다. 자녀는 1남 5녀로 조선 제18대 왕 현종, 숙안(淑安)·숙...
-
현재의 경기도 시흥시 신현동 지역 일대를 1413년부터 1460년까지 관할했던 조선시대 행정구역. 조선 초기 인주(仁州)로 불리던 인천광역시는 1413년(태종 13) 고려 왕실의 잔재 청산과 조선 제3대 왕 태종의 중앙집권 강화를 위하여 경기도 인천군(仁川郡)으로 강등, 축소되었다. 당시 경원부(慶源府)의 옛 이름인 인주의 '인(仁)' 자와 주·부·군·현에 '산(山)'이나 '천(川...
-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였던 1910년부터 1945년까지 경기도 시흥 지역의 역사. 일제강점기 시흥은 서울 남서쪽 농촌 지역에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지역이 변화하였고, 면 중심의 식민지 행정 통제를 받았다. 1919년 3.1운동 때는 시흥의 주민들도 적극 만세 시위를 벌여 독립의 희망을 표출하였다. 하지만 식민지 지배가 계속되면서 70%가 지역 토박이인 시흥...
-
1918년부터 1923년까지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진행된 임야 소유권 재정리 사업.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일제는 토지 조사 사업에 이어 임야 조사 사업을 진행하였다. 임야의 근대적 소유권을 확정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1908년 삼림법에 따른 임야 조사로 엄청나게 늘어난 국유림(國有林)을 다시 원래 소유주에게 돌려주어 국유림 관리 비용을 민간에 떠넘기고 산림을 통제하기...
-
조선 선조 때 경기도 시흥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두 차례에 걸쳐 발생했던 일본의 침략 전쟁.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두 차례에 걸쳐서 조선에 침입한 일본과의 싸움은 1차의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2차의 침입이 정유년에 있었으므로 정유재란이라 한다. 임진왜란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정유재란까지를 포함하여 말한다...
-
관곡지(官谷池)는 조선시대부터 시흥 지역에 세거한 안동 권씨(安東權氏)와 관련이 깊은 곳이다. 조선 제7대 왕 세조 때 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1424~1483]이 중국 명나라 난징[南京]에서 가져온 연꽃을 심어 현재에 이르렀다. 이를 계기로 조선시대 시흥 지역이었던 안산군의 별호(別號)를 ‘연성(蓮城)’으로 부르게 되었다. 관곡지는 강희맹의 딸과 연...
-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장곡동은 경기도 시흥시 중부에 있는 행정동이자 법정동으로 따로 관할하는 법정동은 없다. 장곡동은 조선시대의 지명이었던 장하리(長下里)에서 ‘장'을 응곡리(鷹谷里)에서 ‘곡'을 따서 장곡리라 명명하였다. 장곡동은 조선시대 안산군 마유면의 장하리, 도촌리, 응곡리였다. 1912년 2월 5일 조선총독부...
-
경기도 시흥 지역이 속해 있는 옛 군자면 구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장순한(張淳翰)[1900~1981]은 1919년 4월 7일 군자면 구 장터 만세운동을 모의하다가 일제로부터 피체(被逮)되어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본관은 덕수(德水), 초명은 수산(壽山)·순한(淳翰), 자는 중옥(重玉), 호는 매암(梅巖). 신풍부...
-
경기도 시흥시 조남동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장운익의 신도비. 장운익 신도비(張雲翼神道碑)는 시흥시 향토유적 제2호인 장유(張維) 선생 묘 및 신도비 뒤쪽에 있다. 원래 장운익(1561~1599)의 묘소와 신도비는 서울특별시 성동구 방배동[지금의 서초구 방배동]에 있었는데, 1960년 도시 개발로 묘를 잃게 되고 신도비만 있던 것을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조남리...
-
경기도 시흥시 장곡동에서 활동한 조선시대의 문신. 장유(張維)[1587~1638]는 1612년(광해군 4) 김직재(金直哉)의 무옥(誣獄)으로 파직되어 안산군[지금의 시흥시 장곡동 안골]에 내려와 12년을 살았고 말년을 보냈다. 인조반정으로 등용되어 우의정을 역임하였다. 조선 문학의 사대가(四大家)이며 주자학 중심의 학문적 풍토를 비판하고 양명학에도 조예가 깊었...
-
경기도 시흥 지역에 있었던 과거 사찰의 흔적이나 사찰의 터. 절터는 폐사지(廢寺址)라고도 이르며 과거에 운영되던 사찰이 있었으나 현재는 명맥이 끊겨 흔적만 남은 터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과거 문헌에 기재된 사찰의 명칭이나 절터에서 발견되는 고고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시대적 연혁과 실제 명칭을 추정하는 방식으로 관련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지금의 경기도 시흥 지역으로 판단되...
-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법정동. 정왕동은 정왕산 인근에 민가가 형성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정왕산이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조선 영조 때 편찬한 『여지도서』이다. 이 지도의 「안산군」 산천조(山川條)에는 “正往山在郡西三十里 熢燧在此(정왕산재군서삼십리 봉수재차)”라 하여 정왕산이 안산군 읍치(邑治)에서 서쪽으로 30리[약 11.8㎞]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봉수...
-
경기도 시흥시 화정동 가래울마을에 거주했던 조선 전기 문신이자 한국 양명학의 대종사. 정제두(鄭齊斗)[1646~1736]는 학자로서 평생 학문을 연구하며 살았다. 잠시 평택현감과 회양도호부사로 부임하고 영조의 총애를 받아 이조참판, 대사헌, 세자시강원찬선(世子侍講院贊善), 성균관좨주(成均館祭酒) 등의 요직에 기용되었지만 지속적으로 사퇴를 청하였다....
-
경기도 시흥시 조남동에 있는 수령 350여 년의 측백나무. 조남동 측백나무는 1657년 조선 제17대 왕 효종의 비 인선왕후(仁宣王后)가 법련사(法蓮寺) 창건 기념으로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측백나뭇과로 수령 350년 이상이며 학명은 Thuja orientalis L.이다. 측백나무는 암수한그루이며 맹아력(萌芽力)[줄기가 꺾이거나 줄기에 손상이...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기도 시흥시의 역사.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는 조선시대 안산군(安山郡)과 인천부(仁川府)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군자·수암권은 안산군의 잉화면(仍火面), 초산면(草山面), 마유면(馬遊面), 대월면(大月面)에 해당한다. 소래권은 인천부의 신현면(新峴面), 전반면(田反面), 황등천면(黃等川面)에 해당한다. 시흥 지역은 조선시대에...
-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에서 100년간 3대에 걸쳐 가난한 이웃에게 곡식과 재물을 나누고 베푼 신안 주씨 일가의 선행. 신안 주씨(新安朱氏) 가문은 17세기 전반부터 시흥 지역에 자리 잡았다. 과림동 주씨 가문의 주석범(朱錫範)[1815~1880], 주순원(朱順元)[1836~1895], 주인식(朱寅植)[1862~1945]과 주영식(朱英植)[1867~1952] 형제...
-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여러 대에 걸쳐 분가를 한 경우에 분가의 본가. 종가(宗家)는 대종가와 소종가로 구분한다. 대종가는 성씨의 시조로부터 장자로만 이어진다. 소종가는 대종가에서 중시조를 기점으로 파생된 종가로서 불천위(不遷位)[나라에 큰 공훈을 남기고 죽은 사람의 신주(神主)는 오대봉사(五代奉祀)가 지난 뒤에도 묻지 않고 사당에 영구히 두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락된...
-
일제강점기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 죽율동에서 지역 유지들이 의연금을 모아 설립·운영한 사설 야학. 죽율 야학(竹栗夜學)은 1926년 시흥군 군자면 죽율리 유지들이 농한기에 운영하는 야학으로 개설되었다. 유지들은 1927년 의연금을 모금해 13칸 규모의 교실까지 갖추었다. 1928년 전국적인 큰 가뭄으로 야학 운영이 어려워지자 1929년 유지들은 다시 한번 야학 운영 기금...
-
성인보를 시조로 하고, 경상남도 창녕을 본향으로 하는 경기도 시흥 지역의 세거 성씨. 성인보(成仁輔)의 3세인 성공필(成公弼), 성한필(成漢弼) 형제에 이르러 성씨 가문이 크게 두 계통으로 나뉘어졌다. 6세인 성기(成紀)를 파조(派祖)로 하는 판서공파(判書公派)를 포함하여 모두 13개의 계파가 있다. 성여완(成汝完), 성삼문(成三問), 성혼(成渾)이 대표적인...
-
1834년(순조 34) 김정호가 제작한 경기도 시흥시 일대가 포함된 지도. 『청구도(靑邱圖)』는 축척이 동일한 고지도 가운데 가장 정밀하게 제작되었으며 이후에 제작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의 기초가 된 채색 필사본이다.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가 전국의 지도를 제작하던 과정에서 만들어 낸 중간 단계의 결과물로서 현재 전해지는 것은 후대의 필사본이다. 『청구도』...
-
경기도 시흥에서 일제강점기 토지 조사 사업 과정 중 토지 지배 권리를 두고 발생한 다툼. 일제강점기 시흥 지역에 있었던 토지 소유권 분쟁은 1912년 무렵 일제의 조선 토지 조사 사업(朝鮮土地調査事業)과 관련하여 발생하였다. 학술적 연구는 일제의 사업이 불법적으로 사적 소유권을 약탈하였다는 명제에서 출발하였다. 일제의 토지 조사 사업은 제국주의 식민지의 장기적 경영과 수...
-
1910년대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토지 소유권과 지세 액수 확정, 지적도 작성을 목적으로 일제에 의해 진행된 사업. 일제는 식민 지배의 물적 기반인 토지를 정확히 파악하여 통제하기 위해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전부터 전국의 토지를 조사하는 사업을 강행하였다. 경기도 시흥 지역의 경우 1910년 지주들로부터 토지 신고서를 접수하였고, 1911년 국유지 통지를 거쳐 1914년...
-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하우명을 기리기 위해 집 앞에 세운 붉은 문. 정려(旌閭)란 효자나 열녀, 충신 등의 행적을 높이 알리기 위해 그들이 살던 집 앞에 문(門)을 세우거나 마을 입구에 작은 정각(旌閣)을 세워 기념하는 것을 말한다. 정려는 ‘정문(旌門)’, ‘정표(旌表)’라고도 한다. 정려는 건물의 여부나 대상에 따라 세분된다. 건물 없이 문을 세...
-
1907년부터 국권 회복을 위해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전개한 항일 무장 투쟁. 1907년 8월 대한제국 군대 해산을 계기로 시흥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 서부 지역의 의병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의병들은 일제의 탄압 기구인 순사 주재소를 습격하고, 일진회원(一進會員)을 위시한 친일파를 처단하였으며, 부자들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을 마련하였다. 1909년까지 소규모 유격전 형태로 활동...
-
경기도 시흥시 포동 걸뚝에서 하중동 돌장재를 연결하여 쌓았던 방죽. 호조방죽(戶曹-)은 시흥시 포동 걸뚝에서 하중동 돌장재를 이어 축조되었던 길이 약 720m의 인공 둑이다. 바다로서 개펄이었던 이곳에 조선 경종 원년인 1721년에 둑을 완공하여 농경지로 개간한 것이다. 이 둑은 과거 인천부와 안산군을 연결하는 교통로 구실을 하였으며, 국도39호선 구도로가 건...
-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활을 쏘며 심신을 단련하는 시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동쪽의 활을 잘 쏘는 민족'이라는 의미인 동이(東夷)로 불릴 만큼 활을 잘 다루었다. 따라서 활터의 역사도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나 그 이전부터 있었으리라 추정된다. 국가가 도성 내 활터를 설치한 최초의 기록은 1091년(고려 선종 8) 호부(戶部)의 남랑(南廊)에 군졸과 일반 백성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