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6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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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懸辯 |
영어공식명칭 | Hyeon Byeon |
영어음역 | Hyeon Byeon |
영어공식명칭 | Hyeon Byeon |
이칭/별칭 | 침굉(枕肱),이눌(而訥)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종수 |
[정의]
조선 후기 순천 송광사와 순천 선암사에서 주석했던 승려.
[활동 사항]
현변(懸辯)[1616~1684]은 전라도 나주 출신으로 속성은 윤씨(尹氏)이고 자는 이눌(而訥)이다. 청허계 소요문파의 고승으로 법호는 침굉(枕肱)이다. 현변은 12세 때인 1627년(인조 5)에 출가하여 보광법사(葆光法師)를 따라 천풍산[현 천관산]에서 불경을 공부하였다. 13세 때인 1628년에 지리산에 들어가 소요(逍遙) 태능(太能)[1562~1649]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이로써 청허계 소요문파(逍遙門派) 제1세가 되었다. 18세 때인 1633년(인조 11) 나무를 베다가 크게 다친 이후 ‘마음이 곧 부처’임을 깨닫고 교학보다 선학에 더욱 뜻을 두었다. 이후 순천 선암사와 순천 송광사, 지리산 연곡사와 오봉사 등의 사찰에 머물면서 대중을 교화하고 수행 풍속을 일신하였다. 현변은 만년에 금화산 징광사에 주석하다가 69세 때인 1684년(숙종 10)에 앉은 채로 입적하였다.
[사상과 저술]
침굉 현변은 선사(禪師)로서 경전을 연구한 교학자(敎學者)였으며 만년에는 염불 수행자였으니, 그야말로 선·교·염불의 삼문을 수학한 구도자였다. 제자인 호연(浩然), 약휴(若休)[1664~1738], 정증(靜甑), 확목(廓目) 등은 스승의 유고(遺稿)를 모아 1696년(숙종 22)에 『침굉집(枕肱集)』을 간행하였다. 『침굉집』은 상·하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권[『침굉집』]에는 한시 113수가 수록되어 있고, 하권[『침굉집하(枕肱集下)』]에는 서간문·행장·모연문·조성기·축원문 등 27편이 실려 있다. 또한 ‘침굉가(枕肱歌)’로 전하는 「귀산곡(歸山曲)」, 「태평곡(太平曲)」, 「청학동가(靑鶴洞歌)」 등이 있다.
[일화]
19세에 송계당(松溪堂)을 따라 복현(福縣)[현 전라남도 화순군]에 거처하고 있었는데 현(縣)에서 객사의 상량문을 청하니 송계가 현변에게 사양하였다. 이에 현변은 “선비라야 글을 짓거늘 승려가 대신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읍(邑)의 부탁을 받고 완도 보길도에 머물고 있던 윤선도(尹善道)[1587~1671]를 찾아 글을 청하였는데, 윤선도가 현변을 보고 양자로 삼으려고 놓아주지 않자 스승 보광이 찾아가 데려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