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10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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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晩樂亭 |
영어공식명칭 | Mannakjeong Pavilion |
영어음역 | Mannakjeong Pavilion |
영어공식명칭 | Mannakjeong Pavilion |
이칭/별칭 | 만락정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선변리 2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현진 |
건립 시기/일시 | 1675년 - 만낙정 건립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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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899년 - 만낙정 조동창, 조동만, 조동주, 조동숙 등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02년 - 만낙정 조기성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2년 - 만낙정 중수 |
현 소재지 | 만낙정 -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선변리 23 |
원소재지 | 만낙정 -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선변리 23 |
성격 | 누정|정자 |
양식 | 단층의 맞배지붕 홑처마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조유원의 14대 후손 |
관리자 | 조유원 후손 |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선변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건립 경위]
만낙정은 조유원(趙維元)이 현 순천시 황전면 선변리 선천(仙川) 가에 지은 누정이다. 누정명은 명리를 벗어나 산수를 즐기며 안빈낙도와 의리를 따르는 즐거움을 지향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아 지은 것이다.
조유원의 호는 선천(仙川), 본관은 옥천(玉川)이다. 우암 송시열에게 수학하였고, 1675년(숙종 1)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병자호란(1636) 이후 부친 월천(月川) 조시술(趙時述)[1608~?]이 뜻을 펴지 못하고 별세한 것을 본 데다가, 자신 또한 벼슬길에 뜻이 없었다. 그리하여 만낙정을 짓고 학문 연구와 춘추대의(春秋大義)를 강론하였다. 또한 조유원은 만낙정에서 귀운(歸雲)·층암(層巖)·조하(朝霞)·석연(夕烟)·장천(長川)·심택(深澤)·청풍(淸風)·호월(晧月) 등 여덟 가지 풍광을 소재로 「만낙정팔경운(晩樂亭八景韻)」을 지어 산수지락(山水之樂)의 흥취를 표출하였다.
[위치]
만낙정은 순천시 황전면 선변리 23에 있다.
[변천]
만낙정은 조유원이 생원시에 합격한 1675년(숙종 1) 이후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899년 후손 조동창(趙東昌)·조동만(趙東萬)·조동주(趙東洲)·조동숙(趙東淑) 등이, 1902년 7대손 조기성(趙淇晟)이 중수하였다. 1992년에도 중수가 있었다.
[형태]
만낙정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홑처마의 단층 건물이다.
[현황]
만낙정에는 송시열이 써 준 ‘오도부창주(吾道付滄洲)’라는 현판을 비롯해 ‘만낙정팔영’을 쓴 주련 및 송병순(宋秉珣)[1839~1912]이 지은 중수기와 후인들의 차운시(次韻詩) 현판이 걸려 있다.
[의의와 평가]
만낙정은 순천 지역 17세기 사림의 활동 양상, 사설누정의 발전, 순천 지역 옥천조씨 문중 누정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