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15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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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Folk Tale of Moreusigol |
이칭/별칭 | 「진현고개 이야기」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
집필자 | 김남경 |
성격 | 설화|지명유래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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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 공민왕|홍건적 |
관련지명 | 진현고개 |
모티프유형 | 홍건적 침입으로 임금의 피란길에 생긴 지명 |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백암산 줄기의 진현고개[진티]에 얽힌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울진군 온정면사무소에서 2006년에 간행한 『온정면 사람들의 삶과 민속』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내용]
모르시골은 백암산 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내리다가 만들어놓은 후미진 심곡(深谷)이다. 1361년(공민왕 10) 북쪽 변방을 괴롭히던 홍건적의 무리가 고려에 침입하자 조정 대신들은 공민왕을 모시고 남쪽 복주[지금의 안동]로 피란길에 올랐다. 공민왕 일행이 복주에 머무는 동안 고려군은 청량산과 주왕산에 널리 진을 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태가 심상치 않자 고려군은 울진[평해군] 일원까지 진을 쳤다. 내려오는 전설로는 그때 고려군이 적과 다투었다는 ‘다투메기[다툼목]’, 고려군의 호위 속에 공민왕을 모신 시녀가 낙태를 하여 태(胎)를 모셨다는 ‘태봉재’, 또 적과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는 ‘분팃골’ 등이 있다.
일전을 치른 고려군은 다시 소태리와 남아실, 조금리로 통하는 길목을 지켰는데 이곳이 ‘진현고개[진티]’이다. 고려군은 다시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한 갈래는 백암산 준령의 외선미에서 영양군 수비로 통하는 길목을 장군이 지켰다고 하여 ‘장군미기’라 한다. 다른 한 갈래는 온정면 상조금에서 영덕군 창수면 삼계로 넘어가는 고개를 지켜, 원수를 지킨 목이라는 의미로 ‘원수목이’, 적을 맞아 목을 잘랐다는 의미에서 ‘잔두목이’라 하였다.
이렇게 시절이 뒤숭숭하니 젊은 청년과 아녀자들은 모두 피란을 가고 동네마다 집들은 텅텅 비었다. 어린 조카를 데리고 피난을 간 고모가 살아남기 위해 쌓았다는 백암산 중턱의 고모산성(姑母山城)이 있다.
[모티프 분석]
「모르시골 이야기」의 기본 모티프는 공민왕의 몽진과 홍건적과의 일전에 얽혀 생긴 지명에 관한 민담이다. 전쟁과 지명에 관련된 설화는 지형이 전쟁에 유리하게 작용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내용과 전쟁 중의 피신처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