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B010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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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여수경 |
강원도 철원시에는 이곳 근남면과 같은 명칭의 근남면이 있다. 한국의 많은 마을 지명 중 동일한 지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강원도 철원시 근남면과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에는 단순한 우연으로 같은 행정명을 가진 것은 아니다. 1959년 한국을 강타한 사라호 태풍은 울진을 포함한 한국에 엄청난 피해를 안겨주었다. 무엇보다도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기억의 재현을 두려워할 만큼 그들에게 많은 피해를 가져다 준 것이 바로 사라호 태풍이었다.
당시의 기억을 최진기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비교적 생생한 기억력으로 회상한다. 1959년 음력 8월 15일 태풍이 오기 전 마을은 이미 며칠 전부터 내리던 비로 땅이 많이 적셔 있는 상태였다. 산과 들판은 온통 물을 먹을 대로 머금고 있어 마을 전체에서 샘이 솟아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날도 아닌 추석이었고 아침부터 각 집안에서는 차례를 올리는데 분주하였으며, 마을에는 외지에 나간 자식과 함께 추석을 보내기 위해 마을은 한층 들뜬 상태였다.
이전부터 왔던 비는 추석이라는 명절 분위기에서 사실 중요한 사실이 되지 못하였다. 그러던 오후 1시 경이 넘어서면서 갑자기 내리던 비는 폭우로 돌변하고 마을에는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북동쪽을 향하여 태풍이 한국에 도착한 것이다. 50년대부터 대민사업으로 시작된 제방은 아직 마을을 지킬 만큼 튼튼한 상태가 아니었다. 시간당 40.0~50.0mm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마을 앞 제방은 힘없이 무너졌고, 구장터 위로도 제방이 터지면서 물은 마을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역류하면서 마을로 쏟아져 들어왔다. 매화들의 익을 벼를 삼킨 것은 물론이며, 집들도 삽시간에 삼켜버렸다.
집안의 가제도구와 각종 가구들이 물에 밀려 밖으로 나왔으며, 집안의 빈 독들은 들판을 휘젓고 다니고, 미리 대피하지 못한 우마들은 고개만 뻐금뻐금 내민 채 물에 밀려 떠내려갔다. 마을 앞 내 복판에는 큰 나무들이 뿌리 채 뽑혀 상류부터 쓸려 내려왔으며, 마을 앞산에는 꼭대기에서 나무와 풀들이 불숙 솟아오르는가 싶더니 아래로 향해 쏟아져 내려왔다. 산사태가 났다. 흙더미는 물이 되어 쏟아져 내리고 그 빈자리는 허하기만 하였다. 그렇게 마을은 쑥대밭이 되었고 언제 그랬다는 듯 마을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사라호 태풍은 당시 울진군의 다른 곳에도 많은 피해를 가져다주었지만 성류굴에 인접하였던 근남면 구산리를 비롯한 왕피천 일대는 더 많은 피해가 발생하였다. 당시 주변에 많은 이재민들이 발생하였으며, 울진에서는 이재민들의 새로운 주거지로 강원도 철원과 금화 지역에 만들어주었다.
당시 울진은 경상북도 울진이 아닌 강원도 울진이었다. 지금도 그곳에는 과거 사라호가 만들어 준 울진군 근남면에서 비롯된 강원도 철원시 근남면이 있으며, 현재도 울진군과 자매결연을 맺고 한해 한 번씩 방문하여 우정을 나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