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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포역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0075
한자 院浦驛
영어의미역 Wonpo Stati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윤용출

[정의]

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개설]

조선시대의 역참은 고려의 제도를 부분적으로 개편하면서 재정비되어, 『경국대전』의 전국 역로망 체제로 확립되었다. 역의 수는 고려 때 520여 개 소였으나 『세종실록지리지』에는 540여 개 소로 기록되어 있고, 『경국대전』에는 540여 개 소로 시대에 따라 다소 변천이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한 도별 역수는 경기도 69개 소, 충청도 61개 소, 경상도 151개 소, 전라도 50개 소, 황해도 34개 소, 강원도 57개 소, 평안도 13개 소, 함길도 45개 소였다. 조선시대의 주요 도로에는 대략 30리(12㎞) 간격으로 역이 분포해 있었는데, 이것은 마필(馬匹)이 아닌 도보를 기준으로 한 것이었다고 본다.

[제정경위 및 목적]

역의 기능은 지방 통치를 위한 공문서의 전달, 관물(官物)과 세공(稅貢)의 수송 및 관원사행(官員使行)에 대한 마필의 공급과 숙식 제공, 변방군정(邊方軍情)의 보고 등을 담당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종6품인 찰방과 종9품인 역승을 파견하여, 도내의 역정(驛政)을 관할하게 하였다.

[내용]

역의 운영을 위하여 마필과 역전 12결(結), 그리고 역마 사육을 위한 마전(馬田)과 공수전(公須田) 등을 지급하였다. 역사(驛舍)는 주로 공사방(公事房)·통인방(通引房)·객방(客房)·책실(冊室)로 구성되어 있었다.

[변천]

조선 후기 양산에는 황산역(黃山驛)·위천역(渭川驛)·윤산역(輪山驛) 등이 있었다. 『고려사(高麗史)』 병지(兵志) ‘참역(站驛)’에 의하면, 금주도(金州道)는 31개소를 관할하는데, 황산·양주·위천·소산(蘇山)·동래(東萊)·아등량(阿等良) 등과 더불어 원포역(院浦驛)을 관할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원포역은 양산군의 서쪽 30리 되는 곳에 위치하였다. 19세기 중엽에 간행된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는 이미 혁폐(革廢)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O* 원포역은 고려시대 금주도의 속역 중 하나이며, 조선시대에는 운영되지 않았다. 또한 『고려사』 지 권36 병2 참역 금주도에 따르면, 역명의 한자 표기도 院浦驛이 아닌 源浦驛이 맞다. 202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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