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0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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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五麟齋 |
영어음역 | Orinjae |
영어의미역 | Orinjae Pavilion for Purification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호계동 774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송봉구 |
성격 | 재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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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조선시대 |
소재지 주소 | 경상남도 양산시 호계동 774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호계동에 있는 장수황씨의 재실.
[개설]
재실 이름을 오린재라고 한 이유는 후손들의 기록에 잘 드러난다. “장수황씨의 조상 중에 고려 후기, 조선 전기에 황희(黃喜)가 있었으니 곧 방촌 선생이다. 선생은 문장이 세상에 으뜸이요 정략의 도와 청렴 결백한 자질은 여항의 필부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아흔의 노령에 이르도록 세종대왕을 보필하여 그 치적의 많음은 지필로 말하기 어렵다.
장수황씨 호안공파에 황진(黃珍)이라는 이가 있어 울산으로 옮기고, 뒤에 손자 황직(黃稷)이 있어 밀양으로 옮겼고, 아들에 황우현(黃禹顯)이 있었으니, 곧 우리의 5대조이신데 양산으로 옮기시니 이분이 입향조이다. 호계 골짜기 송백 사이에 집을 지어 세상을 벗어나 자취를 숨기시며 살았다. 아들 다섯을 두었다. 장남이 황오린(黃五麟)이요, 차남이 황오기(黃五驥)요, 그 다음이 황오영(黃五永)이요, 그 다음이 황오건(黃五乾)이요, 그 다음이 황오곤(黃五坤)이다. 조상의 인자박애(仁慈博愛)의 교훈을 받들어 자식을 가르침에 방도가 있었고, 농사를 업으로 하니 세상에서 황은사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