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0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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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嵃 |
이칭/별칭 | 경흘(景屹)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전민욱 |
출생 시기/일시 | 1577년 - 최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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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639년 - 최언 사망 |
묘소|단소 | 최언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서산동 |
성격 | 무인 |
성별 | 남 |
본관 | 영천 |
[정의]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가계]
최언(崔嵃)은 본관은 영천. 자는 대유(大有)이다. 고려 때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을 지내고 연산군(燃山君)[현 영천]에 봉해진 최한(崔漢)을 시조로 하는 영천 최씨(永川 崔氏)이다. 고조는 별시위(別侍衛) 최효분(崔孝汾)이며, 증조는 훈도(訓導)로 좌승지(左承旨)에 증직된 최호(崔浩), 조부는 이조 참판(吏曹參判) 최응사(崔應泗)이다.
부친은 병조 참판(兵曹參判) 최벽남(崔擘南)이며, 모친은 정부인(貞夫人) 창녕 조씨(昌寧 曺氏)로 충순위(忠順衛) 조봉한(曺鳳澣)의 딸이다. 처는 숙부인(淑夫人) 안동 권씨(安東 權氏)로 참봉(參奉) 권응시(權應時)의 딸이며, 슬하에 장사랑(將仕郞) 최광국(崔光國)이 있다.
[활동 사항]
최언은 1577년(선조 10)에 태어났고, 1639년(인조 17)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를 따라 영천성(永川城) 회복에 힘을 보태고, 1602년(선조 35) 별시(別試) 을과(乙科)에 3위로 급제했다.
통훈대부(通訓大夫) 영장효력부위(領將效力副尉), 충무위 부사과(忠武衛副司果), 병절교위(秉節校尉)를 지냈으며, 옥구 현감(沃溝縣監) 재임 중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중군(中軍)으로 남한산성에서 적을 방어하였다.
[묘소]
최언의 묘소는 영천시 서산동(瑞山洞) 성지곡(聖至谷)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