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최여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069
한자 崔汝崗
이칭/별칭 중휘(仲輝),사립옹(簑笠翁)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전민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81년연표보기 - 최여강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17년 - 최여광 무과에 급제
몰년 시기/일시 1652년 1월 9일연표보기 - 최여강 사망
묘소|단소 최여강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오미동
성격 무인
성별
본관 영천
대표 관직 부사과

[정의]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가계]

최여강(崔汝崗)의 본관은 영천. 자는 중휘(仲輝), 호는 사립옹(簑笠翁)이며, 1581년(선조 14)에 태어나 1652년(효종 3) 정월 9일 7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선무랑(宣務郞) 최희여(崔希呂)이며, 증조는 예빈시봉사(禮賓寺奉事) 최덕준(崔德峻), 조부는 참봉(參奉) 최경운(崔慶雲)이다. 부친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창의(倡義) 순절(殉節)로 호조 정랑(戶曹正郞)에 추증되고 고천서원(古川書院)에 배향된 최인제(崔仁濟)이며, 모친은 공인(恭人) 경주 손씨(慶州孫氏)로 손광황(孫光晃)의 딸이다.

부인은 숙인(淑人) 광주 김씨(光州金氏)로 김대성(金大聲)의 딸이며, 슬하에 3남을 두니 최우익(崔友益)·최우지(崔友摯)·최우석(崔友奭)이다.

[활동 사항]

최여강(崔汝崗)은 1617년(광해군 9)에 무과에 급제하고 벼슬은 부사과를 지냈다. 병자호란 때 인조(仁祖)를 남한산성으로 호종하였으며, 환궁한 뒤에는 벼슬을 내놓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영천에서 농사지으며 작은 연못을 만들어 쪽배를 띄워두고 ‘고주(孤舟)’라 칭하였다. 사립옹(簑笠翁)[도롱이와 삿갓을 쓴 늙은이] 최여강이 시로써 말하기를 ‘강동에서 처음 맞음은 걸려 있는 관장(冠張)인데/ 물색은 도리어 위양(渭陽)과도 같구나/ 고깃배 신세는 관여하는 사람이 없으니/ 한 경내 맑은 못은 동정(洞庭)보다 나을레라’라 하였다.

[묘소]

최여강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오미동(五味洞) 삼귀산(三歸山)에 자좌(子坐) 향으로 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