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1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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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遇坤 |
이칭/별칭 | 자길(子吉),학송재(鶴松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전민욱 |
묘소 | 안우곤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사천2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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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배향지 | 학송재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사천2리 |
제단 | 노암단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사천2리 |
관련 유적 | 죽송양화당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
성격 | 입향조 |
성별 | 남 |
본관 | 순흥 |
대표 경력 | 황산도찰방 |
[정의]
순흥 안씨(順興安氏)의 경상북도 영천 지역 입향조.
[개설]
순흥 안씨(順興安氏)는 고려 신종(神宗) 때 흥위위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지내고 손자 판도판서(版圖判書) 안부(安孚)와 증손 안향(安珦)의 귀함으로 신호위상호군(神虎衛上護軍)에 추봉된 안자미(安子美)를 시조로 한다.
안자미의 상계는 알 수 없으며, 당시 흥녕(興寧)[현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 살게 된 후 후손들이 정주하여 순흥(順興)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안자미의 아들 3형제인 안영유(安永儒)·안영린(安永麟)·안영화(安永和)를 각각 파조로 하여 크게 1파, 2파, 3파로 분파(分派)되었으며, 다시 1파는 14개파, 2파는 4개파, 3파는 4개파 등 총 22파로 분파되었다.
[가계]
안우곤(安遇坤)의 자는 자길(子吉), 호는 학송재(鶴松齋)이며, 한양(漢陽) 이현구제(梨峴舊第)에서 태어났다. 고조는 가정대부(嘉靖大夫)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안진(安進)이며, 증조는 사용(司勇) 안탁(安擢), 조부는 찰방(察訪) 안신종(安愼宗)이다. 안우곤의 아버지는 참봉(參奉) 안상(安常)이며, 어머니는 창녕 조씨(昌寧曺氏)로 현감(縣監) 조익수(曺益壽)의 딸이다.
부인은 공인(恭人) 성주 이씨(星州李氏)로 판관(判官) 이보(李堡)의 딸이며, 슬하에 2남을 두니 경릉참봉(敬陵參奉) 안세걸(安世傑)과 참봉(參奉) 안세준(安世俊)이다.
[활동 사항]
안우곤(安遇坤)은 어릴 때부터 자태가 영민하고 인품이 고매하였으며 경세지학(經世之學)을 깊이 공부하여 특히 사림 세력이던 김식(金湜)·김구(金球) 등과 망년지교(忘年之交)로 각별하였다.
황산도찰방(黃山道察訪)의 치적으로 후설직(喉舌職)으로 들어가려던 때에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조광조(趙光祖)를 비롯한 신진 사림 세력이 죽임을 당하고 귀양을 갔으며, 이어 신사무옥(辛巳誣獄)에 연루된 삼종조인 좌의정 안당(安瑭)과 그의 세 아들 안처겸(安處謙)·안처함(安處諴)·안처근(安處謹)을 비롯하여 안처인(安處仁)·안처순(安處順)·안정(安珽)·안형(安珩) 등 많은 지친(至親)들이 사사(賜死)되거나 목을 메어 자결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비분한 나머지 그 날로 벼슬을 버리고 궁을 나왔다.
남쪽으로 내려온 안우곤은 신녕현 화주(花州)의 깊은 산골인 보현산(普賢山) 아래 생천(生川)에 이르러 모구정(茅構亭)을 짓고 은둔하였다. 그 후 후손들에게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도록 경계하며, 산수를 벗하여 지냈다.
[묘소]
안우곤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사천2리 노방 합장곡에 사좌(巳坐) 향으로 있으며, 이돈우(李敦禹)의 찬갈(撰碣)이 있었으나 개갈(改碣)한 이의덕(李義悳)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안당(安瑭) 4부자와 함께 기묘명현(己卯名賢)에 올랐다.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사천2리 즉 노방마을에 학송재(鶴松齋)와 제단인 노암단(老巖壇)이 있으며,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오동리에 죽송양화당(竹松楊花堂)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