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650
한자 安致默
영어공식명칭 An Chi-muk
이칭/별칭 사휴(士休),죽남(竹南)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순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26년연표보기 - 안치묵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50년 - 안치묵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854년 - 안치묵 승문원부정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859년 - 안치묵 성균관전적 제수
활동 시기/일시 1860년 - 안치묵 사헌부지평 제수
활동 시기/일시 1865년 - 안치묵 사헌부장령·사간원정언 제수
몰년 시기/일시 1867년연표보기 - 안치묵 사망
출생지 안치묵 출생지 - 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 여륵리 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순흥(順興)
대표 관직 성균관전적|사헌부지평|사간원정언

[정의]

조선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개설]

안치묵(安致默)[1826~1867]은 문과 급제 후 성균관전적, 사헌부지평, 사간원정언 등을 지냈다.

[가계]

안치묵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사휴(士休), 호는 죽남(竹南)이다. 문성공 안향(安珦)[1243~1306]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안응성(安應成), 아버지는 안정진(安廷震), 어머니는 창원황씨(昌原黃氏)로 황기한(黃綺漢)의 딸이다.

[활동 사항]

안치묵은 한번 글을 배우면 모두 암송할 정도로 기억력이 뛰어나 약관의 나이에 시·부·표·책·경의(經義)는 물론, 선기옥형(璇璣玉衡)·기삼백(朞三百) 등 천문역수(天文曆數)에 이르기까지 박학한 학자가 되었다고 한다. 1850년(철종 1) 증광시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854년 승문원부정자에 제수되었다. 1859년(철종 10) 성균관전적, 1860년에는 사헌부지평에 올랐다. 1865년(고종 2) 사헌부장령과 사간원정언을 역임하였으며, 1867년에 세상을 떠났다. 관직에 있는 동안 안치묵은 과거 부정, 언로 확장, 사치 근절, 붕당의 폐습 배격 등 여섯 가지 개혁안을 제시한 「육조소(六條疏)」를 개진하기도 했다.

[학문과 저술]

안치묵은 젊은 시절부터 학문에 두각을 나타내어 이만도(李晩燾)[1842~1910]는 안치묵을 “그는 사술(邪術)을 배척하고 공도(公道)를 넓혀야 한다는 몇 단락의 글은 더욱 시무에 알맞고 너무도 절절하였다. 성상께서도 마음을 비우고 채납하시어 충분히 시행될 만한 조짐이 있었는데 결국은 세상과 들어맞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신령한 거북을 버리고 상대를 바라보며 욕심내어 턱을 벌리는 짓을 하지 않고자 하였다”라고 평가하였다. 저서로는 4권 2책의 문집인 『죽남집(竹南集)』과 「해동만화(海東謾話)」가 전한다. 특히 「해동만화」는 우리나라의 역사·문물·제도·문화유산 등을 소재로 장편 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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