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7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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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相弼 |
영어공식명칭 | Nam Sang-pil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영배 |
출생 시기/일시 | 1891년 - 남상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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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남상필 풍기면 만세시위운동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남상필 태형 90대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72년 - 남상필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2년 - 남상필 대통령표창 추서 |
출생지 | 남상필 출생지 - 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 대촌리 |
거주|이주지 | 남상필 거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 대촌리 |
활동지 | 남상필 활동지 -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성내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남상필(南相弼)[1891~1972]은 1919년 4월 9일 안용호(安容鎬)[1884~1942] 등이 주도한 풍기면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가계]
남상필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 대촌리 출신이다.
[활동 사항]
남상필은 고향에서 농사를 짓다가 1919년 4월 9일 영주군 풍기면 성내동 풍기장날에 같은 마을의 안용호·최성원(崔盛源)[1894~1926]·남영진(南永鎭)[1894~1920]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때 남상필은 다른 군중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풍기주재소를 향하여 행진하였다. 당시 장터를 순찰 중이던 풍기주재소 일본 헌병들이 갑자기 달려와 안용호 등 3명의 주동자를 체포하였다.
체포 장면을 본 남상필은 격분하여 같은 마을의 황정흠(黃鼎欽)[1889~1955]·김용준(金容俊)[1873~1932]·이화백(李和伯)[1884~1968]·황정흠(黃政欽)[1881~1949] 등과 같이 시위 군중 약 50명을 앞세우고 다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주재소 입구 동남쪽으로 행진하였다. 주재소 앞에 이르러 군중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펼치던 중 안용호 등을 잡아간 헌병들이 달려 나와 시위 군중을 제지하였고, 이때 남상필은 체포되었다. 남상필은 1919년 4월 19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 90도를 받고 풀려났다.
[상훈과 추모]
남상필은 1992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