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6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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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憑虛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 산356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윤석 |
건립 시기/일시 | 1986년 - 빙허루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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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철|철거 시기/일시 | 1753년 - 빙허루 화재로 소실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950년 - 빙허루 소실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30년 - 빙허루 재건 |
현 소재지 | 빙허루 -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 산356 |
성격 | 누각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2칸 |
[정의]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 망산에 있는 누각.
[개설]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은 조선 시대에는 원주목의 속현이었는데, 1904년부터 영월군에 속하게 되었다. 주천면에는 고을의 동서에 청허루(淸虛樓)와 빙허루(憑虛樓)라는 두 개의 누각이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을의 동쪽에 빙허루가 있고, 고을 서쪽의 깎아지른 절벽에 청허루가 있다고 하였다. 두 누각 중에 빙허루에 관한 시가 많이 남아 있는데, 특히 숙종과 영조, 정조가 지은 글이 남아 있다. 조선의 제6대 왕 단종은 세조에게 쫓겨나 영월에서 죽었다. 오랫동안 왕이 아니라 노산군(魯山君)이라는 이름으로 있었는데, 숙종은 단종을 1698년(숙종 24) 복권시켰다. 그 후 60년이 지난 1758년(영조 34) 예조판서 홍상한(洪象漢)이 영월 단종의 능을 살펴보고 와서 보고하는 자리에서 빙허루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홍상한은 “원주에 주천이라는 오래된 고을이 있는데 빙허루라고 있었습니다. 심정보(沈廷輔)가 원주 목사로 있을 때, 경자년(1720년) 1월 28일에 임금께서 어시(御詩)와 술을 내려보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계유년(1753) 화재로 누각이 불타 없어지고 또한 어제시(御製詩)도 소실되었습니다. 지금 원주목사 임집이 바야흐로 이를 아뢰고 옛날 누각을 중건하고 다시 어제시를 걸어 놓고자 합니다.”라고 보고하였다. 영조는 이야기를 듣고 숙종이 썼던 시를 옮겨 쓰고, 여기에 짧은 글을 덧붙였다.
[위치]
빙허루는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 산356번지 망산(望山) 정상에 있다.
[변천]
빙허루는 주천이라는 외진 지방에 있지만, 단종의 복권과 관련되어 왕의 글이 걸리게 되었다. 숙종 때 불이 나서 재가 된 이후 다시 세웠지만 세월이 지나 다시 허물어졌고, 그사이 청허루도 없어지게 되었다. 1930년 무렵 망산에 정자를 다시 세우면서 빙허루라고 불렀는데, 6·25전쟁 때 다시 소실되었다. 1986년 다시 지었다.
[형태]
빙허루는 정면 4칸, 측면 2칸이고, 지붕의 형태는 팔작지붕인 2층의 누각이다.
[현황]
1986년 망산에 빙허루를 다시 세웠으며, 근래에 주천 읍내에 청허루를 세웠다. 두 개의 누각은 여러 차례 허물어지고 복원되었다.
[의의와 평가]
빙허루는 주천평야와 주천강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망산의 정상에 있으며 조선 시대 숙종, 영조, 정조의 어필이나 문장을 걸어 놓았던 유서 깊은 건물이다. 화재와 전란으로 소실되었지만 지역 주민들의 열정으로 다시 복원하였다. 역사적,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