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1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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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勞動服 |
영어의미역 | Work Clothes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위은하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논일이나 밭일, 또는 바다에서 고기잡이할 때 입는 옷.
[개설]
여수는 예부터 농업과 어업이 함께 발달한 지역이었다. 해안선을 끼지 않은 농촌 지역의 경우 주로 농사일을 하는데, 벼나 보리·고구마·깨 등을 많이 심는다. 섬 지역인 돌산의 경우 농업보다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으나, 생선을 잡지 않을 때는 농사도 많이 지었다.
[농사 지을 때 입는 옷]
여수 지역의 경우 예부터 밭일이나 논일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하였으나 집안의 남자가 어업에 종사할 경우 농사일은 여자들이 도맡아서 했다. 논과 밭에서는 주로 벼와 보리, 고구마, 깨 등을 많이 경작했는데, 예전에는 농사일을 할 때 생모시나 무명으로 된 저고리, 또는 적삼에 바지나 고의를 입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정책적으로, 예부터 백의민족이란 소리를 들을 만큼 즐겨 입던 흰옷을 입지 못하게 하고 일본식 노동복의 하나인 몸뻬 입기를 강권하였다.
여수에서 오래 살아온 황순덕[87세, 여수시 돌산읍]의 경우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고, 속살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넓은 띠 모양의 말(袜)을 만들어 가슴과 허리에 둘렀다고 한다. 또 머리에는 수건을 썼으며, 버선에다 고무신을 신고 일했다. 그후 일본 당국의 강요로 몸뻬에 스웨터나 블라우스, 카디건 등을 입었으며, 남편들의 헌옷이나 점퍼를 입고 일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혼례 때 혼수로 일상복을 준비하여 가지고 온 옷을 입기도 했는데, 일하기 편하도록 색이 어두운 검정색이나 남색으로 된 통치마를 준비하여 입었다.
1960년대 여수 여성의 길쌈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면 종아리 길이의 통치마에 적삼 형태의 블라우스를 착용하고 있다. 농사일을 할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지금도 일을 할 때는 과거와 비슷하게 몸뻬에 스웨터나 블라우스, 카디건 등을 입으며, 치마는 거의 입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은 버선과 고무신 대신 양말과 운동화와 같은 편한 신발을 착용한다. 남성들은 모내기 등의 농사일을 할 때는 바지를 걷어 입고 셔츠나 점퍼 등을 착용하며, 챙이 넓은 밀짚모자나 앞에 챙이 있는 야구모자와 장화를 착용한다.
[고기잡이할 때 입는 옷]
여수 근해는 예전부터 황금 어장이라 불릴 만큼 참장어, 메기, 갈치, 민어, 대구, 삼치 등 다양한 생선들이 많이 잡혔다. 이 때문에 왕래하는 배도 많고 정치망이 발달하여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배를 타는 것은 대부분 남자들이었는데, 이는 여자가 배를 타면 부정을 타서 배가 난파되거나 파도가 세다는 속신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저고리에 바지를 착용하고 뱃일을 했는데, 이때 바지는 걷어 입고 그 밑에 짚신을 신었다. 1930년대 수산학교 실습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면, 서양복 형태의 실습복 위에 장화를 신고 커다란 앞치마를 착용하였으며, 모자를 쓰거나 하얀 띠 모양의 머리수건을 앞에서 묶었다. 합성섬유가 보편화된 뒤로는 요즘 흔히 보는 바지와 나일론 점퍼를 구입해서 입었으며, 장화를 신었다.
1980년대 초 배에서 어로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면, 머리수건은 보이지 않고 대체로 모자를 쓴 채 가슴과 등을 덮는 점퍼바지 형태의 장화옷을 착용하고 있다. 반면 여성들은 잡아 온 수산물을 가공하거나 시장에서 판매하는 일을 하였는데, 이때 바지는 몸뻬를 입고 상의로는 스웨터와 블라우스 등을 입었다. 이러한 노동복은 현재와 큰 차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