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8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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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九萬祠堂 |
영어음역 | Nam Guman Sadang |
영어의미역 | Ancestral Shrine of Nam Guman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갈담리 52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양윤식 |
성격 | 사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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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민도리집 한식골기와 팔작지붕 |
건립시기/일시 | 조선 후기 |
정면칸수 | 2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갈담리 521 |
소유자 | 의령남씨 문충공파 종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용인시 향토유적 제53호 |
문화재 지정일 | 2001년 12월 20일 |
[정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갈담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남구만의 사당.
[개설]
남구만이 만년에 살았던 고택이 있던 곳으로, 현재 그의 별묘 겸 영당이 모셔져 있는 곳이다. 남구만은 종묘의 숙종 묘에 배향되었으며, 시호(諡號)는 문충(文忠)이다. 1689년(숙종 15)의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당시 영의정이었던 남구만은 강릉으로 유배를 갔다가 1년여 만에 유배가 풀리자 낙향하여 세상을 떠날 때까지 23년을 이곳에서 보냈다.
[변천]
현존하는 사당은 남구만이 61살 때에 낙향하여 거처하였던 고가를 중수한 것이다. 그가 1771년 세상을 떠나자 양주의 불암산에서 장사를 지냈다가 후에 모현읍 초부리로 이장하였고, 그가 거처하였던 마을에 가묘(家廟)를 세웠다.
사당은 1991년에 홍수로 인하여 훼손되어 철거된 후 1998년에 남구만의 구기(舊基)에 별묘 겸 영당을 비롯하여 외삼문, 관리사 등을 재건하였다. 삼문에는 “藥泉不祧廟附影堂(약천부조묘부영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1999년에 영정 필사본을 새로 모셔 사당에 봉안하였다.
[형태]
정면 2칸, 측면 1칸의 몸채에 좌우로 꺾인 날개채를 갖는 ⊓형의 목조골기와 팔작지붕이다.
[현황]
사당은 별묘 겸 영당, 외삼문, 관리사 등으로 일곽을 구성하고 있다. 바깥마당에는 1998년에 세워진 ‘약천선조유지비(藥泉先祖遺趾碑)’가 있고, 사당 마당에는 ‘약천선생부조묘묘정비(藥泉先生不祧廟廟庭碑)’가 있다. 또한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짖는다(하략)”라는 교과서에 실린 유명한 시가인 「독농가(篤農歌)」를 새긴 시가비(詩歌碑)가 마당 앞쪽에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