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0590
한자 白馬高地 慰靈碑
영어공식명칭 A monument in memory of Baekmagoji[Wiryeongbi]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산명리 182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원미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85년 06월 06일연표보기 - 백마고지위령비 건립
이전 시기/일시 1990년 5월 3일 - 백마고지위령비 이전
현 소재지 백마고지 위령비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산명리 1821 지도보기
원소재지 백마고지 위령비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산명리
성격
재질 현무암 자연석[기단]|화강암[비]
크기(높이, 너비, 두께) 높이 300㎝[기단]|높이 360㎝[비신]

[정의]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산명리에 있는 6·25전쟁 당시 백마고지 전투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비.

[개설]

백마고지 전투는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철원평야의 요충지인 백마고지[395고지]를 쟁탈하기 위하여 한국군과 중공군이 벌인 전투이다. 김종오 사단장이 이끄는 국군 제9사단이 중공군 1만 4000여 명을 격멸하여 한국군의 전투 능력과 지휘관들의 부대 지휘 능력을 과시하였다. 백마고지 위령비(白馬高地慰靈碑)백마고지 전투 희생자를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건립 경위]

한국군은 백마고지 전투에서 승리하여 철원평야 곡창 지대를 확보하였고 현재의 철원군이 자리매김하게 되는 결정적인 기반을 제공하였다. 백마고지 전투에서 희생된 아군[3,146명]과 중공군[1만 4389명] 총 1만 7535명의 영혼을 진혼하기 위하여, 1985년 6월 6일[현충일] 보병 제5사단 장병과 지역 주민들이 화강암 자연석으로 위령비를 건립하였다.

[위치]

백마고지 위령비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산명리 1821 백마고지 전적지에 있다. 백마고지 위령비를 지나면 백마고지전투기념관과 백마고지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형태]

백마고지 위령비는 현무암 자연석으로 석축한 기단 위에 화강암 자연석으로 된 비를 세웠다. 기단 높이는 300㎝이고, 비신 높이는 360㎝이다.

[금석문]

백마고지위령비는 앞면에 ‘백마고지 위령비(白馬高地 慰靈碑)’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모윤숙 시인의 「백마의 얼」이라는 시가 새겨져 있다.

[현황]

1990년 5월 3일 백마고지전적지공원이 만들어지면서 백마고지 전적비가 세워지고 백마고지전투기념관이 건립되었다. 이에 따라 백마고지 위령비도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2012년 11월 20일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백마고지역까지 경원선이 연장 개통되어 비무장지대[DMZ] 관광이 활성화되면서 많은 외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2018년 10월부터는 ‘9·19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 따라 백마고지 인근 화살머리고지에서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2019년 6월부터는 백마고지화살머리고지 유해 발굴 지역 일대를 걸어서 탐방하는 철원 구간이 개방되어 더욱 많은 외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의의와 평가]

백마고지 전투는 오늘날 철원이 있게 한 중요한 전투이다. 6·25전쟁에서 백마고지 탈환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백마고지 위령비는 남북 관계가 개선되어 백마고지화살머리고지가 재조명되면서 남북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 통일에 대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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