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6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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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千孫 |
영어공식명칭 | Park Cheonson |
이칭/별칭 | 규은(葵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한성주 |
출생 시기/일시 | 1431년 - 박천손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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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55년 - 박천손 관직에서 물러나 철원 초막동에 은거 |
몰년 시기/일시 | 1503년 - 박천손 사망 |
사당|배향지 | 구은사 -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사곡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대표 관직 | 사직 |
[정의]
조선 전기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자 강원도 철원 지역에 은거하였던 문신.
[가계]
박천손(朴千孫)[1431~1503]의 본관은 영해(寧海)이고, 호는 규은(葵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전객령 박유(朴瑈)이고, 할아버지는 이조참판 박창령(朴昌齡)이다. 아버지는 병조정랑 박랑(朴浪)이며, 형은 박규손(朴奎孫)·박효손(朴孝孫)이다.
[활동 사항]
박천손은 1431년(세종 13)에 태어났다. 성품이 청렴하고 중후하여 구차하게 속세를 따르지 않았으며, 독학으로 경서(經書)에 통달하여 명망이 높았다. 1455년(세조 원년)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자 벼슬을 사직하고 작은아버지 박제(朴濟)와 박도(朴渡)를 비롯하여 형제인 박규손·박효손·박인손(朴璘孫)·박계손(朴季孫), 그리고 김시습(金時習)·조상치(曺尙治)와 함께 김화의 초막동에 은거하였다. 박천손 등은 초막동에 숨어 「자규사(子規詞)」를 지어 부르며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을 규탄하고 단종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박천손 등은 이후 육단리와 잠곡리 등지에서 수년간 숨어 지냈고, 화를 당할까 봐 각지로 흩어질 때 박천손은 형 박규손과 함께 철원에 머물다가 1503년(연산군 9)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박천손은 철원군 근남면 사곡리에 있는 구은사(九隱祠)에 배향되었다. 구은사에서는 박천손을 포함한 구의사(九義士)의 충절을 기리는 제례를 매년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