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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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淵瑞 |
영어공식명칭 | Park Yeonse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엄찬호 |
[정의]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전향한 친일 인사.
[개설]
박연서(朴淵瑞)[1893~1950]는 일제 강점기 남감리회 전도사로 철원에 부임하여 대한독립애국단 철원군단(大韓獨立愛國團鐵原郡團) 창단에 참여하였다. 이후 전향하여 친일 행적을 보였다.
[활동 사항]
박연서는 1893년 12월 27일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에서 태어났다. 1908년 7월 개성보통소학교를 졸업한 뒤 피어선 성경학교를 거쳐 1928년 1월 감리교 협성신학교를 졸업하였다.
1914년부터 강원도 철원과 화천 등지에서 구역장으로 활동하였고, 1917년 9월부터 남감리회 전도사로 철원에 부임하였다. 1919년 8월 대한독립애국단 철원군단 결성에 가담하여 활동하였고, 1920년 1월 대한독립애국단 강원도단 조직이 발각되어 8월에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그해 12월 징역 2년 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박연서는 1923년 9월 목사 안수를 받고 경기도 포천에서 목사로 활동하다가 1924년 9월 일본 관서 지방에 교포들을 위한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이후 1933년부터 1942년까지 석교교회 담임 목사를 맡았다. 1933년 가을 YMCA 총무인 신흥우(申興雨)가 파시즘 국가 사회주의에 매료되어 결성한 적극신앙단에 참여하였다. 1937년 8월 조선총독부 사회교육과가 주최하는 시국 강연회에 연사로 참여하였으며, 1940년 9월 일제의 전시 통제 기구인 국민정신총동원 기독교조선감리회연맹 이사로 임명되었고 10월에는 선전주임을 겸하였다.
박연서는 6·25전쟁 중에 북한군에 의해 서대문형무소에 구금되었다가 1950년 9월 19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한민국 정부는 박연서에게 대통령표창과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으나 1996년에 친일 행적이 드러나 서훈을 취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