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7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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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健秉 |
영어공식명칭 | Park Geonbye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엄찬호 |
출생 시기/일시 | 1892년 - 박건병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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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8월 11일 - 박건병 대한독립애국단 철원군단 결성에 참여하여 학무과장 선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10월 10일 - 박건병 상해 통합 임시정부 수립 축하 만세 시위 주도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1월 20일 - 박건병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강원도 대표의원 선출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4월 20일 - 박건병 군사통일주비회에서 국민대표회 주비위원으로 선임 |
활동 시기/일시 | 1926년 10월 16일 - 박건병 한국독립유일당 북경촉성회 집행위원으로 선출 |
몰년 시기/일시 | 1932년 01월 10일 - 박건병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3년 - 박건병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 수훈 |
출생지 | 화지리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화지리 |
거주|이주지 | 철원 - 강원도 철원군 |
거주|이주지 | 북경 - 중국 베이징시 |
거주|이주지 | 상해 - 중국 상하이시 |
활동지 | 철원 - 강원도 철원군 |
활동지 | 북경 - 중국 베이징시 |
활동지 | 상해 - 중국 상하이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대한독립애국단 철원군단 학무과장|상해임시정부 임시의정원 강원도 대표의원|한국독립유일당 북경촉성회 집행위원 |
[정의]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박건병(朴健秉)[1892~1932]은 일제 강점기 대한독립애국단 철원군단(大韓獨立愛國團鐵原郡團) 창단에 참여하여 활동하였고, 중국으로 건너가 상해임시정부 등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박건병은 1892년 철원에서 태어났다. 1919년 8월 9일 서울에서 내려온 김재근(金載根)으로부터 대한독립애국단의 설립 취지와 목적을 듣고 강대려(姜大呂)·김철회(金喆會)·박연서(朴淵瑞) 등과 함께 이에 동의하였다. 이틀 뒤인 8월 11일 철원군 도피안사(到彼岸寺)에서 박연서·강대려·김상덕(金相德)·이봉하(李鳳夏)·김완호(金完鎬)·오세덕(吳世德) 등과 함께 대한독립애국단 철원군단(鐵原郡團)을 결성하고 학무과장 직책을 맡았다.
대한독립애국단은 1919년 5월 서울에서 신현구(申鉉九) 등의 주도로 결성된 뒤 강원도·충청도·전라도 등지에 도단(道團)을 설치하였다. 대한독립애국단은 국내의 조직망을 바탕으로 상해임시정부의 선전 활동과 군자금 조달을 비롯한 임시정부의 연통부(聯通府)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였다. 대한독립애국단 강원도단은 철원군단이 발전하여 승격하였으며 철원애국단(鐵原愛國團)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전국의 도단 가운데서도 가장 활동이 활발했고 규모도 컸다.
1919년 9월 20일 박건병 등은 상해임시정부 특파원 신상완(申尙玩)으로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축하 독립 만세 시위 계획을 전달받고 시위를 추진하였다. 1919년 10월 10일 박건병은 전단을 만들어 민가에 배포하였고, 오후 8시에 철원읍 우시장에서 만국기와 태극기를 게양하고 만세를 부르면서 시위를 주도하였다.
박건병은 그 후 중국의 상해로 건너가서 1920년 1월 20일 상해임시정부 임시의정원의 강원도 대표 의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21년 4월 20일 북경 교외 삼패자(三牌子) 화원에서 개최된 군사통일주비회(軍事統一籌備會)에서 국민대표회 주비위원으로 선임되었고, 1921년 9월에는 상해에서 개최된 국민대표회에 참석하였다. 박건병은 1926년 10월 16일 상해에서 결성된 한국독립유일당 북경촉성회(韓國獨立唯一黨北京促成會)의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다가 1932년 1월 10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3년 대한민국 정부는 박건병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