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와 덕천리 들 이름에 관한 설화. 1998년에 울진문화원에서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간물나들과 내평은 울진군 북면 고목리와 덕천리에 있는 들로, 울진 북쪽에서는 가장 큰 들이다. 이 들은 동해안 가까이에 접하고 있어 옛날에 간물[海水]이 들락날락했다는 의미에서 ‘간물나들’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고려 말인...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군. 죽변읍에서 해안의 구 국도를 따라 3㎞ 가량 북상하면 신화리와 고목리쪽에서 흘러내리는 하천과 마주치게 된다. 여기서 하천을 따라 1.2㎞ 가량 거슬러 올라가면 구 국도에서 고목3리 감나무골로 들어가는 소로(小路)에 닿는다. 이 소로의 오른쪽에 나직하고 완만한 경사의 산이 있다. 고목리 고인돌군은 이 산의...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에 있는 조선시대 옹기 가마 터. 북면 고목리에서 옹기 가마 터가 지표 조사됨에 따라 고목리 요지라고 하였다. 고목리 요지의 조성 시기와 요지 수급에 관하여 전하는 기록 문헌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지표 조사 당시 채집된 옹기편을 근거로 조선시대에 조업하였던 유적으로 판단된다. 고목리 요지 두 기는 고목리 지장동 서쪽...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에 있는 삼국시대 유물산포지. 죽변면 소재지에서 국도 7호선을 따라 북면으로 가다 보면 동류하는 계천에 의해 형성된 넓은 충적평야가 나타난다. 그 뒤쪽으로 해발 30~40m 정도의 얕은 구릉 아래에 고목리 기곡동과 터골이 형성되어 있다. 고목리 유물산포지는 이 마을 뒤쪽에 있는 얕은 구릉 위에 위치한다. 고목리 유물산포지는...
-
조선 중기 현풍곽씨 울진 입향조.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이곤(爾坤). 시조는 시중평장사(侍中平章事)를 지낸 포산군(苞山君) 곽경(郭鏡)이고, 아버지는 참봉 곽지정(郭之亭)이다. 어머니는 청풍김씨로 김윤의(金潤義)의 딸이고, 부인은 영해박씨로 박영조(朴寧祖)의 딸이다. 큰아들은 보공장군(保功將軍) 곽자견(郭自堅)이고, 둘째 아들은 기자전참봉(箕子殿參奉) 곽익(郭益)이다. 154...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자는 여문(汝文), 호는 지산(芝山). 목사공(牧使公) 남회의 15세손으로 1888년 8월 27일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에서 남유익(南有翊)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남병표는 4월 13일 낮 울진군 부구리 흥부장터에서 동네 청년 전병항(田炳恒)과 함께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 옥계서원(玉溪書院)에 소장된 한적(漢籍). 1740년(영조 16)에 건립된 옥계서원의 소장 도서로서 『송자대전(宋子大全)』 등 한적(漢籍) 104책이 현존하고 있다. 『만향계안(晩香稧案)』, 『옥계당안(玉溪堂案)』, 『후촌당집옥계서류초선(後村堂集玉溪書類抄選)』의 필사본과 『어촌선생문집』 석인본을 제외하고는 모두 『송자대전』이 주류를 이룬다....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에 있는 건립 연대 미상의 정자 터. 정자(亭子)는 산수의 좋은 경치를 감상하며 놀이를 하기 위해 세운 작은 집을 통칭한다. 정자는 평면 형태에 따라 사모정[사각정], 육모정[육우정 또는 육각정], 팔모정[팔각정 또는 팔우정], 선자정[부채 모양] 등으로 구분되며, 지붕의 재료에 따라 모정(茅亭)[짚, 억새 등으로 지붕을 이은 정자], 초정(草...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옥계서원을 기념하는 비. 옥계서원은 1740년(영조 16)에 읍내리 옥계동에 창건되어 「우암선생진상(尤庵先生眞像)」을 봉안하였다. 그 후 1777년(정조 1)에 초평(草坪)으로 이건하여 경본(京本)을 개모(改模)하여 영당(影堂)이라 하다가 1829년(순조 29)에 선생신판(先生神板)을 봉안하였고, 옥계서원(玉溪書院...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에 있는 대한불교태고종 소속의 사찰. 북면 고목리 지장동 가치산 아래 불믿골[佛信谷]에 있는 절로 승려 대각(大覺) 서순석(徐順石)이 신도 남재칠(南載七) 외 여러 명과 더불어 1954년 5월 16일에 칠성각을 창건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955년에 신도들이 법당과 객사 2동을 세웠다. 승려 대각이 입적하자 그의 아들 승윤(乘潤)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