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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0380
한자 玉溪書院遺墟碑
영어의미역 Monumental Stone for the Site of Okgye Confucian Academy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 610-2[울진북로 1799]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장희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양식 장방형 받침돌
건립시기/일시 1872년연표보기
관련인물 송시열(宋時烈)|김상정(金相定)|전선(田銑)
재질 화강암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 610-2[울진북로 1799]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옥계서원을 기념하는 비.

[건립경위]

옥계서원은 1740년(영조 16)에 읍내리 옥계동에 창건되어 「우암선생진상(尤庵先生眞像)」을 봉안하였다. 그 후 1777년(정조 1)에 초평(草坪)으로 이건하여 경본(京本)을 개모(改模)하여 영당(影堂)이라 하다가 1829년(순조 29)에 선생신판(先生神板)을 봉안하였고, 옥계서원(玉溪書院)이라 편액하였다.

1832년(순조 32) 용장(龍場)으로 이건하여 석당(石堂) 김상정(金相定)을 본원에 종향하였고, 1859년(철종 8) 만은(晩隱) 전선(田銑)을 별묘에 추가 배향하였으나 1868년(고종 5)에 서원 철폐 때에 철폐되었다. 1872년 유허비를 세웠다가 4년 후에 북면 고목리 기곡에 이수하고 강당을 겸축하였다.

그 후 1939년 봉평 옛 터에 유허비를 세웠다가 1942년 고목리 금성동으로 유허비를 옮기고 강당을 세웠으나, 강당은 낡아 허물어졌다. 그러다가 2005년 유허비를 지금의 위치를 옮기고 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다.

[형태]

비각은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로 지붕은 골기와로 맞배지붕을 이었다. 비각 안의 비석은 장방형의 받침돌에 비신, 지붕돌[옥개석]을 올린 가첨석비(加檐石碑) 형태이다.

[금석문]

비신 앞면 상단에 ‘옥계서원유허비(玉溪書院遺墟碑)’라고 전서하고 있다.

[현황]

건물이 허물어지기 전 옥계서원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서당과도 같은 곳이었다. 이 때문에 음력 3월 16일 제사일에는 옥계서원의 동학계인 옥계계(玉溪契)의 계원들이 울진군 전역에서 모여들어 세 선생을 위한 제사를 올렸다. 지금도 옥계계는 활동하고 있지만, 옥계서원이 허물어지고 관련 재산도 관리되지 않아 이전과는 규모나 활동이 축소되었다. 마을의 70대 초로들은 옥계서원에서 한자를 배운 것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당시 서당의 훈장을 했던 이는 남□우, 전□열 선생 등이었다고 전한다.

현재 옥계서원 옛 터는 개인의 밭으로 사용되고 있어 주변에 옥계서원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옥계서원이 철폐되기 전, 옥계서원 앞에 거주하던 집에서 남긴 서원의 사진으로만 이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철폐하기 전 찍은 사진으로 보아도 이미 많이 허물어진 상태이고,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 뒤쪽은 이미 무너져 접근할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옥계서원임을 알 수 있는 건물 배치도 및 평면도는 전하지 않으며, 다만 옥계서원에서 보관하고 있던 서적들은 2003년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되어 보관 중이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에 세워진 옥계서원의 유허비로 울진의 유교 문화를 이해하는 데 좋은 사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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