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장가.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정칙(正則), 호는 우와(愚窩). 아버지는 취죽헌(翠竹軒) 전유추(田有秋)이고, 어머니는 울진장씨로 장여길(張汝吉)의 딸이다. 부인은 신안주씨로 주개신(朱介臣)의 딸이다. 형의 아들 전덕철(田德哲)을 후사로 삼았으나 일찍 죽었다. 아홉 살 때 중양절 모임에서 지은 「중양(重陽)」이라는 시에서 “나그네는 청천월에 취...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담양(潭陽). 족보명은 전도수이다. 봉예공(奉禮公) 전진(田晉)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전병학(田炳學)이다. 1939년 울진 출신의 인물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43년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22명이 송치되어 16명이 희생되었는데, 전만수도 동지들과...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의병.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성삼(聖三), 호는 고당(高堂). 봉예공(奉禮公) 전진(田晉)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전상유(田尙濡)이다. 1905년 12월 7일 울진에서 김용욱(金容旭), 장진수(張鎭洙) 등 8명과 청송 출신의 이하현(李夏玄)과 함께 의거하였다. 1906년 6월 이강년 의병장의 지령을 받은 김형규(金炯奎)가 울진으로 와서 진용을 재...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담양(潭陽). 호는 운석(云石). 봉예공(奉禮公) 전진(田晉)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학산(鶴山) 전윤(田潤)이고, 아버지는 전인상(田絪相)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돌아가자 6년 동안 시묘를 살았다. 1919년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자, 울진군에서도 만세 운동에 동참하여 매화리와 부구리 장날에 만세...
-
일제강점기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찬옥(瓚玉). 봉예공(奉禮公) 전진(田晉)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전무풍(田武豊)이다. 1939년 울진 출신의 인물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43년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22명이 송치되어 16명이 희생되었는데, 전병찬도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우군(雨君). 봉예공(奉禮公) 전진(田晉)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전오상(田五相)이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전병항은 4월 13일 흥부 장날을 기하여 남병표(南炳豹) 등과 함께 만세 운동을 주도하여 많은 군중이 참석한 가운데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때 현장에서 체포되어 부산형무소에서 7개월 간...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범서(範瑞). 전범수(田範秀)라고도 한다. 봉예공(奉禮公) 전진(田晉)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전치주(田穉周)이다. 1933년 울진적색농민조합 사건에 연루되어 1년 동안 구류되었다. 1939년 울진 출신의 인물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43년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담양(潭陽). 이명(異名)은 전기학(田奇鶴)이다. 울진군의 경찰주재소 및 면사무소 사환으로 일하면서 1920년 10월 중순부터 1921년 2월 초순까지 경상북도 영덕(盈德)을 중심으로 동지를 물색하였다. 그 후 박성운(朴聖雲), 김덕문(金德文), 이백이(李伯伊) 등과 함께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낼 군자금을 마련하...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담양(潭陽). 호는 회정(晦亭). 할아버지는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전희경(田希慶)이고, 할머니는 웅신서씨(熊神徐氏)로 진현관대제학(進賢館大提學) 서성윤(徐成允)의 딸이며, 아버지는 찬성사(贊成事) 문원공(文元公) 전경은(田耕隱)이다. 전자수는 고려 말에 첨의평리겸진현관대제학(僉議評理兼進賢館大提學)을 역임하였다....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기독교 종교인. 본관은 담양(潭陽). 봉예공(奉禮公) 전진(田晉)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전창복(田昌福)이며, 아버지는 전달용(田達龍)이다. 전치규는 일찍이 한학을 수학하였다. 1910년 기독교인이 된 뒤 원산으로 가서 캐나다인 침례교 선교사 말콤 펜윅(Malcolm C. Fenwick) 밑에서 6년간 성경 공부를 하였다. 이 기간에 『신약...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치극(致極), 호는 신묵재(愼黙齋). 봉예공(奉禮公) 전진(田晋)의 후손이다. 전택오는 7세에 아버지 상(喪)한 이래로 어머니를 정성으로 섬기었다. 어머니가 병이 나자 처 김씨와 함께 일주일 동안 북두칠성에 기도를 올려 효험을 보았다고 하며, 어머니 등창에 종기를 돋아났을 때에는 입으로 빨아내어 완치하였다...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본관은 담양(潭陽). 호는 묵암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현감(縣監) 전효선(田孝先)이다. 평소 어버이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울진 동쪽을 순시하다가 그의 집에 들러 효행에 감복하여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주었다. “관동 지역에 부임하여 효행과 청렴을 듣고 지금 이곳에 오니 사람의 눈을 놀라게 하네. 여막에 살고 인분...
-
경상북도 울진에 살던 효부. 본관은 담양(潭陽). 아버지는 전병겸(田炳謙)이고, 남편은 신안주씨로 주형중(朱衡中)이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매사에 지각이 있고, 성품이 곧으며 지조가 있었다. 출가하여서는 시부모에게 효도하고 남편을 잘 받드니 이웃과 마을에서 부덕(婦德)이 있다는 칭송이 자자하였다. 1950년 6·25전쟁 때에 남편이 출타하여 돌아오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