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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0555
한자 田炳謙
영어음역 Jeon Byeonggyeom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 지장동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전인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 지장동
성별
생년 1892년연표보기
본관 담양(潭陽)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담양(潭陽). 호는 운석(云石). 봉예공(奉禮公) 전진(田晉)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학산(鶴山) 전윤(田潤)이고, 아버지는 전인상(田絪相)이다.

[활동사항]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돌아가자 6년 동안 시묘를 살았다. 1919년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자, 울진군에서도 만세 운동에 동참하여 매화리부구리 장날에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하였다. 4월 11일 장이 서자 전병겸은 마을에서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 및 매화리·금매리 출신의 청년들과 더불어 만세 운동을 펼쳤다.

오후 3시경 같은 마을에 사는 최효대가 목면으로 만든 태극기와 ‘대한독립’ 등을 쓴 대형 깃발을 앞세우고 ‘대한독립만세’를 높이 외쳤으며, 이에 장터에 모인 군중들이 합세하였다. 이 가운데 11명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는데 이때 전병겸도 체포되어 징역 5월을 선고받았다. 옥고를 치르고 출옥한 전병겸은 멀리 외출을 삼가고 유학에 힘썼다. 찾아온 사람이 아무리 누더기를 입은 자라도 겸상하고 이불을 같이 덮고 자면서 “나라 잃은 백성이 무엇을 차별할 수 있느냐” 하였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1992년 3월 1일 독립 유공자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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