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6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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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夏榮 |
영어음역 | Yi Hayeong |
이칭/별칭 | 치행(致行),금산(琴山)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신대광 |
[정의]
개항기 문신이자 친일파.
[활동사항]
이하영은 경주이씨(慶州李氏)로 자는 치행(致行), 호는 금산(琴山)이다. 경상도 동래군[현 부산광역시]에서 출생하여 소년기에는 상업에 종사했다. 일본인 상인과 미국선교사 알렌을 통하여 익힌 어학 실력이 출중하여 일찍부터 일본어를 익혔고, 국내에 영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전무할 때 영어를 배워 고종의 통역을 맡게 되었다. 집안이 양반 가문도 아니고 과거도 본 적이 없었지만 통역에 뛰어나 1886년(고종 23) 외아문주사(外衙門主事)가 되었다.
이듬해 사헌부감찰, 전환국위원(典圜局委員)이 되었다. 같은 해 9월 박정양(朴定陽) 공사의 일행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겸임주차미국공사관서기관이 되고, 다시 주차미국서리전권대신으로 미국에 주재하였다. 1889년 귀국할 때는 우리나라 철도 건설에 관심을 보인 미국 정부로부터 철도의 모형을 얻어오기도 하였다.
이어 기기국사사(機器局司事), 웅천현감, 흥덕현감, 외아문참의 등을 거쳐 1895년 궁내부회계원장(宮內府會計院長)이 되었다. 이듬해 한성부관찰사가 되었다가 주차일본국특명전권공사, 1897년 주차일본국특명전권대사로 일본에 주재했다. 그 뒤 중추원부의장, 귀족원경(貴族院卿), 중추원의장 등을 역임하고, 1899년에는 의정부찬정, 주차일본국특명전권공사겸의정부찬정(駐箚日本國特命全權公使兼議政府贊政)이 되었다.
1904년에 외부대신이 되었는데 재임 기간 동안 일본에 충청도·황해도·평안도의 어로권 부여, 일본의 황무지개척권 요구, 제1차한일협약, 메가다[目賀田種太郎]의 재정고문 취임, 일본헌병대의 경성치안권 장악, 마루야마[丸山重俊]의 경무고문 취임, 일본에 통신원 이양, 연해 하천의 항해무역권 부여 등의 큰 사건들이 벌어졌고 그때마다 각종 이권을 일본에 넘겨주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때 법무대신과 형법교정총재로서 늑약 체결에 대해 무조건 불가하다고 주장했다가 찬성으로 의견을 바꾸었고 이후 중추원고문에 임명되었다. 그 후 대륙고무공원회사 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상훈과 추모]
1897년 일본 주재시 일본 정부로부터 훈일등욱일대수장(勳一等旭日大綬章)을 받았다. 1900년 훈이등태극장(勳二等太極章)을 받았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일본으로부터 종삼위훈일등자작 작위를 받았으며 또 훈일등팔괘장(勳一等八卦章)을 받았다.
이하영은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에 포함되었고,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도 들어갔으며,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자작 작위를 습작한 아들 이규원과 함께 선정되었다. 묘소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장상동 동막골 장상저수지 위쪽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