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2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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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鳧縣 |
이칭/별칭 | 운봉현,예주,속현,부남면,청보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김호동 |
제정 시기/일시 | 986년 - 운봉현을 청부현으로 개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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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시기/일시 | 1394년 - 청부현 진보현과 합병 |
개정 시기/일시 | 1418년 - 청부현 청보군으로 승격 |
관할 지역 | 청부현 -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
[정의]
고려시대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개설]
청부현(靑鳧縣)은 1394년(조선 태조 3) 진보현(眞寶縣)과 합병되고 1418년(세종 즉위년) 청보군으로 승격되기 전까지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부남면 일대에 있던 행정구역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청부현은 986년(성종 5) 기존 운봉현(雲鳳縣)의 명칭을 변경한 것이다. 아울러 이전까지는 야성군(野城郡)[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일대] 관할이었으나, 이때부터 예주(禮州)[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일대]의 속현(屬縣)이 되었다. 성종 연간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지던 과정에서 읍명 변경과 이속(移屬)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록]
청부현에 대한 자료는 매우 소략하다. 고려 및 조선시대 때 간행된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지명 변경과 연혁이 간략히 언급되어 있는 정도이다.
『삼국사기』 권35, 잡지(雜志) 제4, 지리(地理) 2, 신라조(新羅條)에 따르면 “적선현(積善縣)은 본래 고구려의 청기현(靑己縣)으로, 경덕왕이 개명하였다. 지금의 청부현이다.”라고 나타나 있다. 『고려사』 권57, 지(志) 제11, 지리(地理) 2, 경상도(慶尙道) 예주조(禮州條)에는 “청부현은 원래 고구려의 청기현인데 신라는 적선(積善)으로 고쳐서 야성군 관할의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에 부이현(鳧伊縣)이라 하였다가, 다시 운봉현으로 고쳤으며, 성종 5년에 지금 명칭으로 고쳐서 본 주에 소속시켰다.”라고 언급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권150, 경상도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 청송군(靑松郡)에는 “예전 청부(靑鳧)는 본래 고구려의 청기현인데, 신라에서 적선으로 이름을 고쳐서 야성군의 영현(領縣)을 삼았고, 고려 초에 부이현, 또 운봉현으로 삼았다가, 성종 5년 병술(丙戌)에 또 청부현으로 고쳐서 예주 임내(任內)에 붙였다. 본조(本朝) 태조 3년 갑술(甲戌)에 진보(眞寶)와 합하였는데, 무술년(戊戌年)에 금상(今上)이 즉위하자, 공비(恭妃)의 내향(內鄕)인 까닭으로 청보군(靑寶郡)으로 승격시켰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4, 경상도 청송도호부(靑松都護府), 건치연혁조(建置年革條)에는 “본래 고구려의 청기현이다. 신라 때 적선으로 고쳐 야성군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초에는 부이(鳧伊)라고 하였고, 또 운봉(雲鳳)이라고 고쳤으며, 성종은 청부라고 고쳐서 예주의 속현으로 하였다. 본조에서는 태조 3년에 진보에 합쳤고, 세종이 즉위하던 해에 소헌왕후(昭憲王后)의 본향(本鄕)이라고 하여 승격시켜 청보군(靑寶郡)으로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변천]
986년(성종 5) 이후 예주의 속현으로 존재하다가 조선왕조가 개창되고 몇 해 지난 1394년(조선 태조 3)에 진보현과 합병되었으며, 1418년(조선 세종 즉위년) 청보군으로 승격하였다.
[의의와 평가]
청부현은 고려시대 기간 동안 예주의 속현으로 존재하였다. 청부현과 같은 속현의 존재 양상은 중세 우리나라 지방통치의 특징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