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3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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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居驛 |
영어공식명칭 | Mungeo Stati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문거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재관 |
[정의]
조선시대 청송군 안덕면 문거리에 설치된 교통·통신 기관.
[개설]
문거역(文居驛)은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문거리에 있었던 역의 하나로서 안기도(安奇道)의 안동-청송-흥해 방면으로 이어지는 역로(驛路)에 있었다. 조선시대 경상도 안동의 안기역(安奇驛)을 중심으로 설치되었던 안기도는 안동을 중심으로 의성-의흥-신령 방면, 안동-청송-흥해 방면, 안동-진보-영해 방면으로 이어지는 역로였다. 소속 역은 주로 소로(小路) 또는 소역(小驛)에 속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공문서의 전달과 관리의 왕래, 숙박 및 공물 진상 등의 관물 수송을 담당하기 위한 기관으로 문거역이 만들어졌다.
[관련 기록]
문거역에 관해서는 조선시대 청송도호부(靑松都護府)를 소개하고 있는 각종 지리지(地理志)나 읍지(邑誌)의 역원조(驛院條)에 역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많은 역이 조선 후기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였기에 그 위치나 다른 역과의 이격거리, 보유한 역리(驛吏), 역노비(驛奴婢), 마필(馬匹) 등의 기록이 남아 있어 일단을 확인할 수 있다.
1937년 간행된 『청기지(靑己誌)』에 따르면 문거역은 청송부(靑松府) 남쪽 50리[약 20㎞], 서쪽으로 화목역(和睦驛)과 30리[약 12㎞], 북쪽으로 청운역(靑雲驛)과 40리[약 16㎞], 동쪽으로 이전평역(梨田坪驛)과 50리, 남쪽으로 경주 인비역(仁庇驛)과 60리[약 24㎞]의 거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중마(中馬) 2필, 복마(卜馬) 5필, 역리 220인, 역노 16인, 역비 30인을 보유하였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또한 고종조에 간행된 『영남역지(嶺南驛誌)』「안기도사례(安奇道事例)」에는 문거역 소유의 위전답(位田畓)이 31결(結)로 확인된다.
[내용]
문거역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 지역인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문거리에 있었던 역으로, 마을 이름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을 뿐 역으로서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문거역은 청송에서 내려오다 흥해와 경주로 큰길이 나누어지는 삼거리 지점에 있었다. 문거역과 관련해서는 일제에 항거하여 일어난 청송의진(靑松義陣)이 감은리전투(甘隱里戰鬪)를 앞두고 주둔하였던 활동지의 한곳으로서 알려져 있어 독립운동과도 연관된 유서 깊은 장소이다.
[변천]
고대 삼국시대부터 설치되어 운영된 역은 미증유의 전란인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그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법으로 명(明)의 파발제(擺撥制)를 정착시켜 봉수(烽燧)와 더불어 군사 통신수단의 역할을 맡게 됨으로써 역의 통신 기능이 약화되었다. 이와 같은 조선시대의 역은 1896년(고종 33) 근대적인 통신제도와 철도 교통이 점차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됨으로써 폐지되기에 이르렀으며, 문거역도 이러한 흐름을 따라 그 기능을 상실하고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