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5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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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晩翠書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청운리 97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난아 |
건립 시기/일시 | 1830년 - 만취서당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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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청운리 971 |
성격 | 서당 |
양식 | 장혀수장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관리자 | 평해황씨 문중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청운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당.
[개설]
청운리에 있는 만취서당(晩翠書堂)은 황학(黃㶅)[1758~1804]을 기리기 위하여, 1830년(순조 30) 후손들이 건립한 서당이다. 황학의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학중(學中), 호는 만취동(晩翠洞)으로 권렴(權濂)과 김종덕(金鍾德)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황학은 한평생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주력한 학자이다.
[위치]
만취서당은 청운리 청운동마을 서쪽 끝의 마을보다 약간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변천]
만취서당이 있는 곳은 황학이 생전에 후학들을 강학하던 장소였다. 이에 후손 황대손(黃大孫)이 주축이 되어, 1830년 황학의 강학 장소에 만취서당을 건립하였다. 1843년(헌종 9) 이병하(李秉夏)가 황대손의 부탁을 받고「만취서당기(晩翠書堂記)」를 작성하였다.
[형태]
만취서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기와집이다. 평면 구성은 앞쪽은 마루를 놓고 뒤로는 방 2칸을 연접시켰다. 가구는 오량가(五樑架)의 장혀수장형이다.
[현황]
만취서당은 마을을 조망할 수 있는 산중턱에 건립되었다. 그러나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만취서당으로 찾아가는 길은 잡목과 수풀로 우거져 있으며, 건물 부재들도 강건하지 못하여 지속적인 훼손이 우려된다.
[의의와 평가]
만취서당은 18~19세기 청송 지역 학통의 전개 양상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