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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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合江里平山申氏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합강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상훈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합강리에 있는 평산 신씨 판사공파 집성촌.
[개설]
합강리 평산신씨 집성촌은 합강리 큰도랑골마을에 있는 평산신씨 세거지이다. 평산신씨는 황해도 평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고려의 개국공신인 신숭겸(申崇謙)을 시조로 한다. 평산신씨 영해파(寧海派)는 장절공(壯節公) 신숭겸의 13세손 신현(申賢)이 영해군(寧海君)으로 봉해짐에 따라 ‘영해신씨(寧海申氏)’로 분관(分貫)하였다. 1960년 영해신씨에서 평산신씨로 본관을 변경하고, 평산신씨 대동보규에 의거하여 15세손 신득청(申得淸)을 파조(派祖)로 하는 판사공파(判事公派)로 분파하였다.
1464년에는 신숭겸의 18세손인 판사공파 풍호(風乎) 신지(申祉)가 진보면 합강리에 입향하였다. 신지의 9세손 신한태(申漢泰)는 진보면 합강리에서 파천면 중평리로 이거(移居)하여 마을을 개척하였다. 신한태의 자손이 판사공파 진보종파(眞寶宗派)이다. 진보면 합강리 일대에 잔류한 평산신씨는 진보파(眞寶派)라고 불린다. 신지의 5세손 우헌(寓軒) 신연(申演)은 안덕에 이거하여 청송파(靑松派)의 파조가 되었으며, 후손들은 안덕면 복리와 지소리 등에 세거하고 있다. 신지의 7세손 성천(聲川) 신전(申𥴈)은 합강 서편으로 분가하여 서파(西派)의 파조가 되었으며, 그 후손들은 신촌리와 부곡리 등에 산거하고 있다. 이 외에도 청송 지역에는 평산신씨 25세손 신종위(申從渭)를 파조로 하는 어천파(魚川派)가 있다.
[명칭 유래]
합강(合江)의 옛 이름은 아림(鵝林)으로, 과거에는 수풀이 우거지고 새들이 많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현재의 명칭인 합강은 이 주변에서 강줄기들이 만나 반변천이 된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합강리의 다른 자연마을인 율리(栗里)는 밤나무가 많다고 하여 붙인 밤나무뜰의 한자 표기이다.
[형성 및 변천]
합강은 약 1,000년 전 신안주씨와 원주이씨가 개척하였다. 1464년에는 신숭겸의 18세손인 평산신씨 판사공파 풍호 신지가 입향하였다. 합강리의 자연마을인 율리는 함양오씨 오학문(吳學文)이 입향하였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해 합강과 율리를 합쳐 진보면 합강리가 되었다. 1992년에는 임하댐 건설로 마을 일부가 수몰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는 영해신씨[현 평산신씨 판사공파]가 48가구였으며, 임하댐이 착공되기 전, 마을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에는 총 60가구 중 50가구가 평산신씨였다. 1992년의 임하댐 건설로 마을 일부가 수몰되고 대부분의 주민이 마을을 떠났다.
[자연환경]
합강의 동쪽으로는 광덕, 남쪽으로는 후평, 서쪽으로는 기곡, 북쪽으로는 추현과 접하고 있으며, 합강리를 남북으로 두 차례 가로지르는 반변천을 통해 안동시의 지리와 물길로 이어져 있다. 안동시 임하댐 건설로 상류 지역인 합강리는 마을 북쪽의 농업 지역이 대부분 수몰된 상태이다.
[현황]
2017년 현재 합강리에는 8가구가 거주하며, 그중 평산신씨는 3가구 정도이다. 합강리에는 평산신씨 판사공파 진보 입향조 신지를 기리는 풍호정(風乎亭)과 문중의 건물인 신정(新亭)이 있으며, 임진왜란 때 왜군의 포로가 되어 자결한 참판공(參判公) 신예남(申禮男)과 순절한 그의 부인 민씨를 기리는 쌍절비각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