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6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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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巨城里英陽南氏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거성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상훈 |
부흥마을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거성리 | |
성격 | 집성촌 |
가구수 | 20가구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거성리에 있는 영양 남씨 송정공파 집성촌.
[개설]
거성리 영양남씨 집성촌은 거성리 부흥마을에 있는 영양남씨 세거지이다. 영양남씨는 경상북도 영양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영양남씨 시조 김충(金忠)은 당나라 현종(玄宗) 때(685~762) 중국 여남(汝南)에서 안렴사(按廉使)로 일본에 갔다가, 경상북도 영덕의 죽도(竹島)에 표착하여 신라에 정착하였는데, 신라 경덕왕은 김충이 여남에서 왔다고 하여 남씨(南氏) 성을 내렸다. 김충은 남씨 성을 받고 이름을 남민(南敏)으로 고쳤다.
청송 영양남씨 입향조 운강(雲岡) 남계조(南繼曹)의 후손들은 송정공파(松亭公派)의 지파인 운강공파(雲岡公派)에 속한다. 운강공파는 종파 외에도 운강공의 손자 남세주(南世柱)의 거성파(巨城派), 운강공 차남 남수(南邃)의 월매파(月梅派), 3남 남관(南寬)의 용연파(龍淵派)와 대구광역시로 이거한 4남 남실(南實)의 입석파(立石派)의 네 소파로 나뉜다.
[명칭 유래]
거성리 부흥마을은 농사가 잘되어 흥하는 마을이라 하여 부흥마을이라 불렀다.
[형성 및 변천]
경상북도 청송군 영양남씨 입향조는 운강 남계조로, 임진왜란을 피하여 영양에서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로 이거(移居)하였다. 남계조의 후손들이 월매리를 비롯한 현동면 부근에 기거하여 지금의 집성촌을 이루었다. 운강공의 손자 남세주가 거성리로 이거하여 거성파를 이루었다. 거성리의 영양남씨 가구 수는 1992년에 36가구였으며 현재 20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는 거성리, 도평리, 개일리, 월매리를 합쳐 영양남씨가 총 191가구였다.
[자연환경]
거성리는 자초산 골짜기에 자리한 마을로, 동서로 긴 형태를 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현동면소재지와 인접하고, 마을 동쪽에는 신풍저수지가 있다. 부흥마을은 거성리 서쪽에 있는 마을로 북쪽에는 밭골지와 산을 두고 있으며 남쪽에는 병보천이 흐른다. 마을 중앙을 새마을로가 가로지르고 있다.
[현황]
2017년 현재 거성리는 다섯 개 반으로 나뉘어 있으며, 그중 1반과 2반에 영양남씨가 다수 거주한다. 1반과 2반을 합쳐 50가구 정도이고, 그중 20가구가 영양남씨이다. 마을 내 영양남씨 재실에서 매년 제사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