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6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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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淵 |
영어공식명칭 | Cho Yeon |
이칭/별칭 | 정경(靜卿),내헌(耐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489년 - 조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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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10년 - 조연 진사시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29년 - 조연 탄핵 |
몰년 시기/일시 | 1564년 - 조연 사망 |
거주|이주지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산족리 |
거주|이주지 | 청송도호부 안덕현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
외가|처가 | 청송도호부 안덕현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
묘소|단소 | 인동현 신동 - 경상북도 구미시 신동 |
사당|배향지 | 영모재 - 경상북도 구미시 신동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함안 |
대표 관직 | 의금부경력 |
[정의]
조선 전기 청송에 거주했던 문신.
[개설]
조연(趙淵)[1489~1564]은 진사사에 급제하고 음직을 수행하였다. 관리의 전횡을 미워하여 낙향하면서 풍자시를 지어 화제를 일으키고, 백성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어 임금에게 올리려는 은어 진상을 막기도 하였다.
[가계]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정경(靜卿), 호는 내헌(耐軒). 아버지는 진산군수(珍山郡守)를 지낸 조동호(趙銅虎), 어머니는 증(贈) 이조참판(吏曹參判) 이원(李原)의 딸 증 정부인(貞夫人) 고성이씨(固城李氏), 할아버지는 정절공(貞節公) 조려(趙旅), 증조할아버지는 증 사복시정(司僕寺正) 조안(趙安), 부인은 진사(進士) 조치당(趙致唐)의 딸 숙부인(淑夫人) 창녕조씨(昌寧趙氏)이다.
[활동 사항]
조연은 1510년(중종 5) 진사시에 급제하였다. 여러 차례 문과에 응시하였으나 급제하지 못하고, 대신 음직으로 유곡도찰방(幽谷道察訪)과 의금부경력(義禁府經歷) 등을 역임하였다. 1529년 선릉참봉(宣陵參奉)으로 있을 때에는 선릉의 나무를 잘 관리하지 못했다는 모함을 받고 탄핵되기도 했다. 조연은 척신 김안로(金安老)가 정국을 전횡하는 것을 미워하여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낙향하던 중 원벽(院壁)에다 김안로를 풍자하는 시를 지었는데, 여러 선비들이 보고 통쾌하게 생각하였다.
인척인 심연원(沈連源)이 조연을 방문하였을 때, 고을 수령이 은어 두 마리를 보내 온 일이 있었다. 심연원은 은어의 크기에 놀라 임금에게 진상하려 하였다. 이때 조연은 은어 진상이 지속되면 고을 백성들에게 부담될 것을 우려하여, 심연원의 은어 진상을 말렸다는 일화가 전한다.
한편, 조연은 혼인 후 처가가 있는 경상도 청송도호부 안덕현(安德縣)[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에 거주하였다. 하지만 만년에 고향을 그리워하여, 1563년(명종 18) 경상도 함안군 산족리(山足里)[지금의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로 돌아왔다. 훗날 조연의 손자 조지(趙址)가 안덕으로 이주하여, 청송 지역에는 지금까지 함안조씨 일족이 세거하고 있다.
[학문과 저술]
조연은 글씨에 능해 초서·예서·전서를 잘 썼다. 함안에 거주할 때 함안현감 오언의(吳彦毅), 진사 안택(安宅)과 함께 시문을 짓고 서로 화답하였는데, 이때 지은 시문을 엮어 『내헌환향록(耐軒還鄕錄)』을 편찬하였으나, 현재 전하지는 않는다.
[묘소]
경상북도 구미시 신동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통정대부 호조참의에 증직되었다. 경상북도 구미시 신동의 묘소 인근에 재실인 영모재(永慕齋)가 건립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