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7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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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震榮 |
영어공식명칭 | Kim Jinyeong |
이칭/별칭 | 중옥(重玉),벽초(碧樵),김해영(金海榮)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영배 |
출생 시기/일시 | 1876년 - 김진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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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6년 - 김진영 산남의진 입진 |
활동 시기/일시 | 1907년 - 김진영 산남의진 장영집사와 군문집사로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08년 - 김진영 청송 동부진 서종락 부대에서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10년 - 김진영 만주 망명 활동 및 투옥 |
몰년 시기/일시 | 1921년 - 김진영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7년 - 김진영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85년 - 산남의진기념사업회 산남의진 발상 기념비 건립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0년 - 고와실전투 |
출생지 | 경상도 청송도호부 안덕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 |
활동지 | 경상북도 청송군 |
활동지 | 경상북도 영일군 - 경상북도 포항시 |
활동지 | 경상북도 영덕군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산남의진 장영집사|군문집사 |
[정의]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개설]
김진영(金震榮)[1876~1921]은 1906년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장영집사(將營執事)에 이어 군문집사(軍門執事)로 활동하였고, 1908년 청송 동부진 서종락(徐鍾洛) 부대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가계]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중옥(重玉), 호는 벽초(碧樵), 이명은 김해영(金海榮). 1876년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896년 청송의진(靑松義陣) 중군장(中軍將)으로 활약한 김대락(金大洛)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김진영은 1906년 3월 경상북도 영천(永川)에서 정용기(鄭鏞基)가 산남의진을 일으키자 이에 입진(入陣)하였다. 그 뒤 정용기가 잡혔다가 풀려나 1907년 4월 재기할 때 장영집사로 활동하였다. 의진이 관동(關東)을 향해 북상하던 중, 9월 1일 경상북도 영일군 죽장면 입암(立巖)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여기서 대장 정용기 등이 전사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김진영은 남은 군사를 수습하면서 정용기의 아버지 정환직(鄭煥直)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군문집사로 활동을 하였다. 의진은 경상북도 흥해·청송·영덕 등지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웠지만 1907년 12월 정환직 대장마저 순국하였다. 1908년 3월 최세윤(崔世允)이 대장으로 추대되자 지역별로 책임자를 배치하고 소규모 부대의 유격전을 펼쳤다. 이때 김진영은 청송 동부진 주왕산(周王山) 일대에서 활동하는 서종락 부대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1908년 10월 서종락 대장이 체포되고, 남은 부대도 1910년 고와실전투(高臥室戰鬪)를 끝으로 항전은 막을 내렸다. 김진영은 가족들을 데리고 만주로 망명하여 활동하였으나 체포되어 공주 감옥에서 몇 년간 옥고를 겪었다.
[상훈과 추모]
1997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산남의진기념사업회는 1985년 포항시 죽장면 북구 입암리 서포중학교 뒤편에 산남의진 발상 기념비(山南義陣發祥記念碑)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