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10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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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松鄕校 |
영어공식명칭 | Cheongsong-Hyanggyo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중앙로 259-30[월막리251-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백지국 |
건립 시기/일시 | 1426년 - 청송향교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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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604~1610년 - 청송향교 부의 동쪽 2리 국동으로 이건 |
이전 시기/일시 | 1635년 - 청송향교 이건 |
이전 시기/일시 | 1659년 - 청송향교 국동으로 이건 |
이전 시기/일시 | 1694년 - 청송향교 이건 |
이전 시기/일시 | 1871년 - 청송향교 이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700년 - 청송향교 부사 이상훈 명륜당, 청아루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719년 - 청송향교 부사 성환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785년 - 청송향교 부사 임기철 낙일재 창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24년 - 청송향교 부사 황경언 명륜당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51년 - 청송향교 부사 유치홍 대성전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63년 - 청송향교 부사 이달영 명륜당 수즙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71년 - 청송향교 부사 윤현기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62년 - 청송향교 청아루 보수, 명륜당 재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1년 - 청송향교 대성전, 명륜당 보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2년 - 청송향교 명륜당, 동서무, 주사 신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5년 - 청송향교 동재·서재 신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2년 6월 11일 - 청송향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93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청송향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59년 - 청송향교 사라호 태풍으로 청아루 훼손 |
현 소재지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중앙로 259-30[월막리251-3] |
원소재지 | 청송부의 북쪽 5리 굴동 |
성격 | 향교 |
양식 | 홑처마 맞배지붕[대성전]|맞배지붕[동서무]|홑처마 팔작지붕[명륜당]|맞배지붕[동·서재]|겹처마 맞배지붕[청아루] |
정면 칸수 | 3칸[대성전]|3칸[동서무]|3칸[대성문]|5칸[명륜당]|3칸[동·서재]|5칸[청아루]|2칸[관리사] |
측면 칸수 | 2칸[대성전]|1칸[동서무]|1칸[대성문]|3칸[명륜당]|1칸[동·서재]|2칸[청아루]|2칸[관리사] |
소유자 | 경북향교재단 |
관리자 | 신철환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에 있는 조선시대 지방 국립 교육기관.
[개설]
청송향교(靑松鄕校)는 조선시대 청송 지역 유생들이 머물며 수학한 교육의 공간이자,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를 지내는 제향의 공간이었다. 청송 지역 내 향교에서 교육과 제사 주재 집단은 지역 내 재지세력(在地勢力)이었다. 그들은 청송향교를 중심으로 향론을 형성하며, 향촌 자치 기구로서 향교를 활용하였다. 2012년 6월 11일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93호로 지정되었다.
[위치]
청송향교는 청송읍 중앙로에 있다. 청송군청 입구에서 중앙로를 타고 남쪽으로 약 50m 직진 후 좌회전하여 20m쯤 가다 보면 왼쪽에 청송향교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지역 근처에는 조선시대 청송도호부 관아 부속건물인 찬경루(讚慶樓)도 있다.
[변천]
청송향교의 내력은 자료마다 차이를 보이는데,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에 수록된 『청송부읍지(靑松府邑誌)』[1832], 『영남읍지(嶺南邑誌)』 에 수록된 『청송부읍지』[1895], 1937년에 간행된 『청송군지(靑松郡誌)』, 『교남지(嶠南誌)』 등에 기록된 내용이다. 이 자료에 의하면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부의 북쪽 5리 굴동(屈洞)에 향교가 건립되었다. 1604년에 부의 동쪽 1리 국동(菊洞)으로 이건(移建)하고, 1635년(인조 13)에 다시 옮겨 개건(改建)하였다. 그 후 1659년(효종 10) 국동 옛터로 이건되었다.
둘째, 『청기지(靑己誌)』에 기록된 내용이다. 이 자료에 의하면 향교는 부의 북쪽 5리에 건립되었다가, 1604년에 부사(府使) 이영도(李詠道)에 의해 부의 북쪽 5리 국동으로 이건되었다. 이영도가 청송도호부사로 재임한 것은 1606년(선조 39)~1610년(광해군 2)으로, 1604년에 중건하였다는 기사와는 시기상 맞지 않다. 1604년부터 이건되어 이영도가 부임하였던 1606~1610년까지 중수·중건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1694년(숙종 20)에 부사 이문징(李文徵)의 주도로 이건되고, 1871년(고종 8)에 부사 윤현기(尹顯岐)가 중수하였다.
셋째, 1990년에 간행된 『청송군지』의 내용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성종조(成宗朝)에 권간(權幹)이 향약(鄕約)을 세우고 교규(校規)를 정하여 청송향교를 창건하였다. 임진왜란으로 묻어 둔 위패를 1606년에 부사 이영도가 부임하여 방광산(放光山) 아래로 옮겨 향교를 세웠다. 부사 이문증(李文證)이 서무(西廡)와 강당(講堂), 주사(厨舍)를 세우고, 1642년(인조 20)에 양극선(梁克選)이 하마비(下馬碑)를 건립하였다. 1694년에 이문징이 옛 교궁으로 이건할 것을 계청(啓請)하여 이축하고, 1700년(숙종 26)에 부사 이상훈(李相勛)이 명륜당(明倫堂)과 청아루(菁莪樓)를 세웠다. 1719년(숙종 45)에 부사 성환(成瑍)이 향교를 중수하고, 1824년(순조 24)에 부사 황경언(黃儆彦)이 명륜당을 중수하였다. 1851년(철종 2)에 유치홍(兪致弘)이 대성전(大成殿)을 중수하고, 1863년(철종 14)에 이달영(李達永)이 명륜당 등을 수즙(修葺)하였다. 1871년에 윤현기(尹顯岐)가 향교를 이건하고, 개수와 보수를 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향교를 유지하였으나 6.25전쟁으로 동무(東廡)와 서무(西廡)가 소실되었다. 심상광(沈相光)이 건물을 중수하여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넷째, 2010년에 간행된 『청송향교지』에 기록된 내용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청송향교는 1426년(세종 8)에 부사 정지아(鄭之雅)가 굴동 방광산에 창건하였다. 임진왜란으로 향교가 소실된 것을 1604~1610년 동안 이건·중창하고, 1629년(인조 7)에 부사 이문징이 재임 3년간 동·서무, 강당, 주사를 보축(補築)·중수하였다. 1693년(숙종 19)에 부사 이문징이 발의하여 1694년에 현 위치로 대성전 및 부수 건물을 이건되었다.
이후 청송향교는 지속적인 중수와 보수를 통해 유지되어 오다가 1959년에 사라호 태풍으로 크게 훼손되었다. 1962년에 동·서무를 철거하고 그 자재를 이용하여 청아루를 보수하고 명륜당을 재건하였다. 1981년에 대성전과 명륜당을 보수하고, 1986년부터 1989년까지 청아루가 보수되었다. 1992년에 명륜당과 동·서무, 주사를 신축하고 대성전과 청아루를 보수하였다. 2005년에 대성전 기와를 교체하고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신축되었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조선시대 및 근대 편찬된 자료에서는 향교의 건립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광복 이후 편찬된 자료인 『청송군지』와 『청송향교지』는 각각 성종 연간, 1426년에 향교가 건립되었다고 한다. 처음 건립된 것은 부의 북쪽 5리 굴동이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고, 1604~1610년 사이 부의 동쪽 1리 국동으로 옮겨 중창되었다. 1629년, 1635년, 1659년과 1694년에 각각 이건된 기사가 교차로 확인되는데, 이는 연대를 오기한 것인지, 자료에서 각각 누락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이후 현대까지 지속적인 중수와 보수가 이루어졌고, 2005년 신축, 보수, 개수 등을 통해 향교의 면모를 갖추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형태]
청송읍 중심지에 위치한 청송향교는 대성전을 서쪽, 명륜당을 동쪽에 둔 좌학우묘(左學右廟)의 배치 양식이다. 현재는 대성전, 동무, 서무, 대성문(大成門), 명륜당, 동재, 서재, 청아루 및 관리사(管理舍)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대성전은 제향 공간의 중심 건물이다. 공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동·서무는 중국과 우리나라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공간이다. 전일입재(前日入齋) 때에는 유생들의 숙소로도 쓰였다. 두 건물의 규모와 형식은 동일하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대성문은 대성전의 정문으로 사용되는 삼문(三門)이다. 정면 3칸의 일각대문(一脚大門)이다. 명륜당은 강학 공간의 중심 건물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동·서재는 향교 교생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는 공간이다. 두 건물의 규모와 형식은 동일하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명륜당 맞은편에 있는 청아루가 자리잡고 있다. 명륜당과 함께 강학의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 건물이다. 겹처마로 구성하고 맞배지붕을 덮고, 측면에 풍판을 달았다. 관리사는 향교를 관리인이 거주하는 공간이다. 동재 뒤에 위치하고 있다.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이다.
[현황]
2012년 6월 11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9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어 보호 및 관리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청송향교는 조선 전기에 건립되어 청송 지역에 유교적 이념을 보급하며 인재를 양성하는 동시에 향론을 형성한 공간으로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수차례의 이건으로 인해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대성전의 경우1600~1700년대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대성문은 규모는 작지만 구조적으로 세밀하게 배려되어 있으며, 그 모양도 특색이 있어 건축학적으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