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14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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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可川集 |
이칭/별칭 | 가천유고,가천선생문집 |
분야 | 구비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대웅 |
편찬 시기/일시 | 1965년 - 『가천집』 편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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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 시기/일시 | 1969년 - 『가천집』 간행 |
소장처 | 신상익 주손가(胄孫家)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 |
성격 | 문집 |
저자 | 신상익 |
간행자 | 신두희 |
권책 | 2권 1책 |
행자 | 10행 20자 |
규격 | 세로 20.5㎝|가로 16㎝ |
어미 | 상하 내향 이엽 화문 어미 |
권수제 | 가천집(可川集) |
판심제 | 가천유고(可川遺稿) |
[정의]
근대 개항기 청송 출신의 유생이며 진보의진의 부장 신상익의 문집.
[개설]
『가천집(可川集)』은 개항기에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에 거주했던 유생으로 의병장이었던 신상익(申相翼)[1852~1919]의 시문집이다.
[저자]
신상익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자는 경보(敬輔)이고, 호는 가천(可川)이다.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과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의 문인이다. 1882년 증광시(增廣試)에 3등 46위로 입격(入格)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1896년 4월 7일 진보의진(眞寶義陣)을 결성하여 창의장으로 방산(舫山) 허훈(許薰)을 추대하고 부장(副將)을 맡았다. 그의 며느리 김해허씨(金海許氏)가 방산의 손녀였으므로 적극적으로 방산을 지원하며 의병진을 이끌었다. 진보의진 해산 후 귀가하여 은거하며 진보시장(眞寶市場)의 설립을 후원하였으며, 훼철된 봉람서원(鳳覽書院)의 복원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신필흠(申弼欽)의 『천재집(泉齋集)』, 신진운(申晉運)의 『만오집(晩寤集)』 등 선대의 문집을 간행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가천집』은 신상익의 장남 신두희(申斗熙)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하고 정리하여 편집한 후 1959년 권옥연(權頊淵)의 서문과 유동수의 발문을 받아 1969년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2권 1책의 석판본(石版本)이다. 행자는 10행 20자로 구성되어 있다. 크기는 가로 16㎝, 세로 20.5㎝이고, 광곽은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郭)이며, 상하 내향 이엽 화문 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구성/내용]
본집은 2권 1책이다. 제1권은 시(詩) 52수, 서(書) 11편, 축문(祝文) 2편, 뇌문(誄文) 1편, 제문(祭文) 9편, 유사(遺事) 1편, 제2권은 부록(부록)으로 만사(挽詞), 뇌사(誄詞), 제문(祭文), 가장(家狀), 행장(行狀), 묘갈명(墓碣銘) 등이다. 그중 김상종(金象鍾), 이만도(李晩燾), 이중언(李中彦)에 대한 만사, 이만규(李晩煃) 등에게 보낸 편지 등으로 보아 안동, 의성 등 주변 지역의 유생들과 교유했음을 알 수 있다.
신상익은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과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으로부터 퇴계학의 정맥을 전수받아 청송 지역의 유학을 심화시켰으며, 그가 남긴 「취정일록(就正日錄)」은 학습 여행기인데, 취정(就正)이란 『논어(論語)』의 “도를 가진 스승을 찾아가 학문을 질정받는다[就有道而正焉]”라는 구절에서 따온 말로, 훌륭한 스승을 찾아가 학업의 질정을 받는다는 뜻이다.
[의의와 평가]
『가천집』은 근대 개항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학풍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