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3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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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羅州道大行臺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관부(전통 시대)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이재범 |
[정의]
강원도 철원 지역에 도읍하고 있던 고려 초기에 나주 일대의 통치와 관리를 위하여 설치한 기구.
[개설]
고려 초기인 918년 나주에 설치되었던 관부이다. 나주도대행대(羅州道大行臺)가 설치된 시기는 고려의 수도가 철원에 있던 때였다. 나주도대행대는 나주 일대의 세력을 장악하고 군사적 시위와 치안 및 행정 등을 관리하기 위한 관부였다. 나주도대행대의 명칭은 왕건의 역성혁명 직후 단 한 차례만 나오지만 관련 자료로 보아 그 기능이나 권한이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주도대행대의 폐지 시기는 고려 태조의 후삼국 통일 이후일 것으로 추정할 따름이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설립 경위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밝혀진 바는 없지만, 관부의 명칭이 나주도대행대라고 한 것으로 보아 나주로 가는 방면을 담당하는 행대라고 추정한다. 설치 시기에 대하여는 918년이라는 주장 외에 고려 이전 태봉 시기의 912년 덕진포 해전 승리 이후 그 지역을 관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설하였을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 나주는 태봉과 후백제, 고려와 후백제 사이에서 가장 치열하게 지속적으로 전투가 진행되던 지역이었다. 나주 지역의 주도권은 912년 이후 태봉이 장악하였고, 태봉을 계승한 고려로 이어졌다. 나주도대행대는 정복지의 통치 행위와 백성의 위무를 위하여 설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직 및 담당 직무]
나주도대행대의 조직에 관하여서는 수장이 시중이라는 사실 이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 나주도대행대는 정치, 행정, 군사, 치안, 경제 등 통치 행위와 함께 정복지의 백성들을 위무하는 업무도 총괄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나주도대행대의 담당 업무에 대하여는 나주도대행대의 우두머리 명칭이 당시 태봉과 고려의 관제에서 가장 높은 관부인 광평성의 우두머리 명칭과 같은 시중이라는 데서부터 유추할 수 있다. 시중은 문무관을 총괄하는 지위로서 군사 및 치안과 함께 민생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나주 일대의 정부와 같은 독립성이 강한 관부로 서경의 분사제도(分司制度)[고려 시대에 서경을 부도(副都)로 삼아 개경의 관아를 서경에 나누어 설치한 제도]와 비교되기도 한다. 이러한 기구의 특성으로 보아 왕건이 서남해안을 장악하고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을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관련 기록]
관련 기록은 『고려사(高麗史)』 권1 태조세가 원년 9월 계사에 단 한 번 나온다. 그 내용은 “이전 시중 구진을 나주도대행대 시중으로 임명하니 구진이 이전 임금 때에 오랫동안 지방에서 수고를 하였다는 이유로 가기를 꺼려하였다.”것이 전부이다.
[변천]
918년 설치되었다는 주장 외에 912년 덕진포해전 승리 이후라는 주장도 있다. 폐지 시기는 관련 기록이 없다. 폐지 시기에 대하여서도 후삼국 통일 이후일 것으로 추정할 따름이다.
[의의와 평가]
나주도대행대는 기록은 거의 없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띤다. 특히 나주도대행대가 설치된 시기는 철원이 국가의 수도로서 중앙관제를 실시할 때이다. 따라서 고려가 철원에서 건국을 하였다는 역사적 의미를 상기시키는 한편, 당시의 권력 구조를 파악할 수 있게 하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