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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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剛山電氣鐵道株式會社 |
영어공식명칭 | Keumgangsan Electric Railway, Inc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외촌리 655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영규 |
설립 시기/일시 | 1919년 12월 - 금강산전기철도주식회사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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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시기/일시 | 1924년 08월 01일 - 금강산전기철도주식회사 철원~김화 구간 1차 개통 |
설립 시기/일시 | 1931년 07월 01일 - 금강산전기철도주식회사 철원~내금강 구간 전체 개통 |
해체 시기/일시 | 1942 년 1월 1일 - 금강산전기철도주식회사 경성전기주식회사에 흡수합병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4년 9월 4일 - 금강산전기철도주식회사 금강산전기철도교량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12호로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44년 - 금강산전기철도주식회사 금강산전기철도 창도~내금강 구간 철거 |
최초 설립지 | 금강산전기철도주식회사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외촌리 655 |
성격 | 철도 회사 |
설립자 | 쿠메 타미노스케[久米民之助] |
[정의]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외촌리에 있었던 민간 철도 회사.
[개설]
1919년 쿠메 타미노스케[久米民之助]가 설립한 금강산전기철도주식회사는 조선 최초로 전기를 동력으로 이용하여 열차를 운행하였던 철도 회사이다.
[설립 목적]
일제강점기의 철도는 일본의 대륙 침략의 교두보 마련과 군사수송, 식민지 자원 수탈을 목적으로 건설되었는데 금강산전기철도주식회사는 관광을 목적으로 금강산 전기철도를 건설한 점이 특이하다.
[변천]
1919년 12월 일본인 사업가 쿠메 타미노스케가 금강산전기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1942년 일제의 전력 사업 합동 정책에 따라 금강산철도주식회사는 경성전기주식회사에 흡수 합병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금강산철도주식회사는 1921년 철도 공사를 시작하여 1924년 8월 경원선 철원~금화[김화] 구간 28.8㎞를 1차 개통하였고, 1931년 7월 철원~내금강역을 잇는 116.6㎞의 선로를 완공하였다. 금강산 관광과 자원 수송을 병행하였던 금강산 전기철도 이용객은 조선인뿐만 아니라 일본인 수도 많았다. 임시 영업을 시작한 1924년에는 184명, 이듬해인 1925년에는 186명의 관광객이 이용하였지만 내금강까지 개통된 1931년에는 1만 5219명으로 늘었고 1938년에는 2만 4892명으로 급증했다.
금강산전기철도주식회사는 당시 다른 사유 철도 회사와 달리 전등(電燈) 전력 공급 사업을 겸하였는데 중대리발전소와 신일리발전소 등을 건설하고 선로 인근 지역과 경성에 전등 전력 공급 사업을 펼쳤다. 금강산 전기철도는 일제강점기 말에는 지하자원 수탈의 수단으로 이용되어 김화·금성·창도 지역 광산물[유화철]이 흥남항을 거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현황]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전쟁 수행을 위한 새로운 선로 건설과 간선 보강에 필요한 자재를 확보하기 위하여 1944년 금강산 전기철도 창도~내금강 간 49㎞를 철거하고 철원~창도 간 67.6㎞만 운행하였다. 광복 이후 금강산 전기철도 전 구간이 38선 이북에 있어 북한의 통제 하에 들어가게 되었고 6·25전쟁 이후 비무장지대를 통과하는 금강산 전기철도는 사실상 폐선되었다. 군사분계선 주변을 돌아 흐르는 한탄강 계곡에 남아 있는 금강산 전기철도교량은 2004년 9월 4일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12호로 지정되었으며 최근 안보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의의와 평가]
금강산 전기철도는 철원 동부 지역과 김화 지역 학생들의 통학 수단이자 주민들의 운송 수단이었을 정도로 철원 주민들에게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이동 수단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철원 지역 및 수도권 학생들은 금강산 전기철도를 타고 금강산으로 수학여행을 갔다. 금강산 전기철도는 ‘금강산 수학여행’의 추억이 어린 철도이자 인민군 징집에도 이용되었던 가슴 아픈 역사를 품은 철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