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4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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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利組合 |
영어공식명칭 | Surijohap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영규 |
[정의]
일제 강점기 농지개량과 식량증산 사업을 위해 강원도 철원 지역에 설치된 법인체.
[개설]
수리조합은 1906년 3월 대한제국 탁지부령 제3호로 시행된 「수리조합 조례」에서 비롯되었다. 1908년 「수리조합 설치 요강과 모범 규약」이 제정 공포되어 1908년 12월 옥구서부수리조합을 필두로 전국에 수리조합이 설치되기 시작하였다.
수리조합은 일제 강점기 농민 수탈의 대명사였다. 수리조합을 통한 토지개량사업은 일제가 당시의 쌀 증산 시책을 위해 강제로 밀어붙인 정책이었다. 초창기 수리조합은 살인적 수세 징수로 농민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어 수세 거부 운동과 소작쟁의를 불러왔다. 일제 강점기 설립된 철원중앙수리조합은 철원평야를 벼농사가 가능한 지역으로 바꾸는 대변혁을 이루었으나 이는 수많은 조선인 소작인과 노동자들을 강제로 착취한 결과이다. 일제의 온갖 수탈을 견디지 못한 많은 농민들이 피와 땀으로 일군 농토를 버리고 이후 만주와 간도로 떠났다.
[조선중앙수리조합 설립]
철원평야 개척의 획기적인 계기가 된 것은 조선중앙수리조합(朝鮮中央水利組合)의 설립이다. 조선총독부는 1922년 1월 1일 기존에 있었던 철원수리조합(鐵原水利組合)을 평강군(平康郡)까지 확장하여 규모를 6,000정보[약 59.50㎢]에서 8,500정보[약 84.30㎢]로 늘리고 이름도 중앙수리조합(中央水利組合)으로 바꿀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철원 지역은 약 천 년 전 궁예(弓裔)가 도읍하였던 곳이다. 일부 지역의 경우 논밭으로 이용되기도 하였으며 천연적으로 주어진 조건이 아주 부족한 편은 아니었다. 불이흥업주식회사는 철원 지역에 자본을 투자하고 과학적인 수로 개발, 종자 개량, 시비와 경운 등 근대적인 농사법을 활용하면 충분히 발전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리하여 1921년 불이농장(不二農場)을 세우고 여러 가지 시험을 거쳐 회사 대표인 후지이 간타로[藤井寬太郞] 스스로 창립위원장이 되어 수리조합 설립을 추진하였다.
조선중앙수리조합은 전북 삼례평야(參禮平野) 일대의 익옥수리조합(益沃水利組合)과 평북 용암포 대정수리조합(大正水利組合)의 중간에 있어 이름 붙여진 것이고, 바로 이 세 곳이 1920년대 당시 조선의 3대 수리조합이었다. 일제가 한반도의 중앙을 의미하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큰 수리조합을 철원에 설치한 것은 철원의 지정학적 가치와 정치·경제적 중요성을 높게 산 것이다. 이미 전북 임익수리조합(任益水利組合) 및 평북 대정수리조합의 양 수리조합 설립에 공을 세운 일본인 후지이 간타로를 강원도 철원과 평강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수리조합의 대표로 선정하였다. 중앙수리조합은 평강군 현내(縣內), 철원군 어운(於雲), 동송(東松), 철원(鐵原), 묘장(畝長), 인목(寅目), 내문(乃文), 마장(馬場) 등 9개 면(面)의 8,000정보와 1927년 5월 철원군 북(北), 어운, 인목 등 4개 면의 토지 600정보[약 5.95㎢]의 확장 인가를 얻었다. 1922년 10월 설치 인가가 났고 1923년 봄부터 공사에 착수하여 1925년 5월 완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