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청년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0453
한자 新韓靑年會
영어공식명칭 Shinhan Youth Association
이칭/별칭 신한애국청년회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강원도 철원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영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6년 03월연표보기 - 신한청년회 조직
해체 시기/일시 1946년 08월연표보기 - 신한청년회 해체
최초 설립지 신한청년회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지도보기
성격 반공단체
설립자 김윤옥 목사

[정의]

광복 직후 강원도 철원 지역에 있었던 반공 비밀결사.

[개설]

신한청년회는 1946년 3월 철원제일감리교회 부목사였던 김윤옥 목사가 주도하고 장흥교회 청년들로 구성된 반공 비밀결사조직이다. 분단 초기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철원 지역 주민들, 특히 철원제일감리교회와 장흥교회 신도들을 중심으로 나중에 통일될 것에 대비한 예비 모임의 성격이 짙었다.

[설립 목적]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로 광복 후 초대 부통령을 지냈던 이시영(李始榮)[1869~1953]은 머지않아 38선이 무너질 것이라고 판단하고 극비리에 ‘38선이북관리국’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시영은 상해임시정부 상임이사를 지낸 김병조 목사의 아들 김윤옥[당시 34세] 목사를 비밀리에 불러 38선 이북 강원도 책임자를 맡아 반공 공작을 펴 달라고 요청하였다. 김윤옥 목사는 당시 북강원도 도청 소재지였던 철원군을 활동 무대로 정하고, 신분 위장을 위하여 철원제일감리교회 부목사로 부임하였다. 김 목사는 당시 교세가 크고 젊은 청년들이 많은 장흥교회와 대체로 통행이 자유로운 대한수도원[한국 개신교 최초 수도원]을 이용하여 비밀 결사대인 신한청년회를 조직하였다.

[변천]

1946년 3월 조직된 신한청년회는 북강원도 회장으로 김윤옥 목사, 고문으로 박경룡 목사와 이성해 장로가 선출되었고, 철원군 회장에 박성배 장로, 부회장에 정국환 장로, 총무부장 박정배 장로, 조직부장 김관순 장로, 섭외부장 김정필 장로 등 모두 12명의 임원과 회원 30여 명의 명단을 확정하였다. 당시 신한청년회 임원은 모두 장흥교회 교인이었고 전체 회원의 80%가 장흥교회나 철원제일감리교회 성도였다.

1946년 5월 12일 철원제일감리교회에서 열리는 사경회[성경 공부를 하는 모임]를 이용하여 앞으로 할 일을 의논하였다. 그러나 3개월 만에 조직이 탄로나 1946년 8월 말 철원제일감리교회에서 열린 사경회에 북한 보안서 대원들이 들이닥쳐 회원 10여 명이 체포되었으며, 체포된 회원들에게 가해진 고문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후 회원들에 대한 검거령이 내려져 42명이 체포되었는데 장흥교회 교인만 30명이나 되었다. 이들 중 일부는 철원에서 풀려나지만 30여 명은 5년~8년형을 선고 받고 원산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조직 책임자인 김윤옥 목사와 회장 박성배 장로, 부회장 정국환 장로, 섭외부장 김정필 장로 등 주동자 4명은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감옥에서 숨졌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신한청년회는 3·1운동 때와 같이 거리로 뛰쳐나와 공산주의 반대를 외친 뒤 북한군 내무서도 습격할 계획을 세우고 일본군이 버리고 간 총과 칼을 최대한 모아 마을 별로 보관하여 왔다. 이때 사용하기 위해 ‘김일성을 타도하자, 형제여 통일을 이루자’라고 쓴 전단 수천 장도 등사하여 금학산 깊숙한 바위틈에 숨겨 놓았다.

[의의와 평가]

신한청년회의 반공 정신은 장흥교회 청년이 중심이 된 철원군치안대 ‘대한청년단’으로 이어져 철원이 수복될 때까지 강력하게 북한군에 대항하였다. 6·25전쟁 당시 대한청년단은 인민군 1개 소대 17명을 사살하였다고 전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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