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5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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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兪拓基 墓碑 |
영어공식명칭 | Yucheokgi Tombston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 산14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원미경 |
건립 시기/일시 | 1769년 10월 - 유척기 묘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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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691년 - 유척기 출생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767년 - 유척기 사망 |
현 소재지 | 유척기 묘비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 산140[지혜동] |
성격 | 비 |
양식 | 비좌개석(碑座蓋石)형 |
재질 | 화강암[개석]|대리석[비신]|화강암[대석]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282㎝[전체 높이]|150㎝[비석 높이]61㎝[폭]|55㎝[두께] |
소유자 | 유척기 후손 유웅 |
관리자 | 유척기 후손 유웅 |
[정의]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유척기의 묘비.
[개설]
유척기(俞拓基)[1691~1767]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기계(杞溪)[경상북도 포항], 자는 전보(展甫), 호는 지수재(知守齋),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대사헌을 지낸 유철(兪撤)이 할아버지이고, 청주목사를 지낸 유명악(兪命岳)이 아버지이다. 1714년(숙종 40)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검열(檢閱)에 제수된 이후 정언(正言)·수찬(修撰)·이조정랑(吏曹正郎)·사간(司諫) 등을 역임하였다. 1725년(영조 1) 노론의 집권으로 이조참의(吏曹參議) 대사간(大司諫)을 역임하고 1726년 승지(承旨)로 참찬관(參贊官)을 겸하다가 경상도관찰사·양주목사(楊州牧使)·함경도관찰사·도승지(都承旨)·평안도관찰사·호조판서·영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유척기는 대신(大臣)의 기풍을 지닌 노론 중에 온건파였고, 당대의 명필가이자 금석학(金石學)의 권위자였다. 유척기 묘비(兪拓基 墓碑)는 1769년(영조 45) 10월 건립되었다.
[위치]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문혜사거리에서 텃골로 향하는 지방도 제463호를 따라가면 논골다리를 지나 왼쪽의 곰농장 이정표로 올라가다가 축사 오른쪽 산에 있다.
[형태]
유척기 묘비는 비의 머리 부분에 개석을 씌운 비좌개석(碑座蓋石) 형태로 개석은 팔작지붕 위에 보주(寶珠)가 있으며, 문양이 없는 장방형 대석 위에 비가 세워져 있다. 전체 높이는 282㎝이고, 비석 높이는 150㎝, 폭은 61㎝, 두께는 55㎝이다. 개석과 대석은 화강암이고 비신은 대리석이다.
[금석문]
유척기 묘비에는 ‘유명조선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중추부사치임봉조하 시문익 유공척기묘(有明朝鮮大匡輔國崇祿大夫領中樞副使致任奉朝賀諡文翼俞公拓基墓)[정경부인 평산신씨부좌(貞敬夫人平山申氏祔左)]’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유척기 묘비는 비의 마멸 상태는 양호하나 총탄 흔적이 왼쪽에 9곳 있고, 뒷면에 15곳이 있다.
[의의와 평가]
유척기는 영의정까지 지낸 저명한 정치가이자 당대의 명필이었고 금석문의 대가였다. 말년에 철원군 갈말읍 군탄리에 있는 한탄강 순담에서 요양하였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