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5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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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愛國先烈追慕碑 |
영어공식명칭 | Memorial Monument for Deceased Patriots[Aegukseonyeol Chumobi]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금학로251번안길 12[화지리 54]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원미경 |
건립 시기/일시 | 1967년 04월 15일 - 애국선열 추모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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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애국선열추모비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금학로251번안길 12[화지리 54] 철원중고등학교 교정 |
성격 | 비 |
양식 | 탑비(塔碑)|방형석축(方形石築) 대지(臺地)에 3중 기단(基壇) |
재질 | 화강암|대리석|오석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높이 5m[탑신]|둘레 6m[탑신]|높이 2m[기단]|둘레 20m[기단] |
[정의]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화지리 철원중고등학교에 있는 일제 강점기 철원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비.
[개설]
철원군은 강원도에서 3·1운동이 가장 먼저 일어난 곳으로 1919년 3월 2일 「독립선언서」가 군내에 뿌려졌고 3월 10일 철원읍을 필두로 3월 12일 갈말읍과 김화읍에서 많은 주민들이 거리로 나와 만세 시위를 벌였다. 1919년 8월에는 대한독립애국단[일명 철원애국단]이 결성되어 상하이임시정부를 도와 자금을 모금하고 국내 독립운동을 벌이다 1920년 전원 체포되었다. 애국선열 추모비(愛國先烈追慕碑)는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독립 정신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하여 1967년 4월 15일 건립하였다.
[건립 경위]
철원군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독립운동에 적극적이었으며 3·1운동과 대한독립애국단 활동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들이 많은 지역이다.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독립 정신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철원애국선열기념사업회, 철원애국선열추모비건립위원회에서 애국선열 추모비를 세웠다. 비문에는 이봉하(李鳳夏), 박연서(朴淵瑞), 박용만(朴容萬), 오세덕(吳世悳), 강대려(姜大呂), 김철회(金喆會), 엄재형(嚴載亨), 박용철(朴容喆), 박건병(朴建秉), 김완호(金完鎬), 김세준(金世俊), 박용규(朴容珪), 김재근(金載根), 이용우(李用雨), 조종대(趙鍾大) 등 15명의 애국선열 명단이 적혀 있다.
[위치]
애국선열 추모비는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화지리 철원중고등학교 교정에 있다.
[형태]
애국선열 추모비의 구조는 방형석축(方形石築)의 대지(臺地)에 3중으로 된 기단(基壇) 위에 각층 다른 형태의 양상을 띤 조각으로 구분해 축조(築造)된 비이다. 화강암과 대리석, 오석의 재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탑신 높이 5m, 탑신 둘레 6m, 기단 높이 2m, 기단 둘레 20m이다.
[금석문]
애국선열 추모비의 비문은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이 지었고, 비문 서체는 박정희 대통령이 하사(下賜)한 친필이다.
[현황]
애국선열 추모비 앞에서는 매년 3·1운동을 기리는 3·1절 기념식이 거행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 지역은 경원선 기차가 자주 왕래하여 서울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실시간대로 전달되고 사람들과 물류가 몰리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그래서 3·1운동도 강원도에서 가장 빠르게 일어나 춘천, 횡성, 홍천 등지로 전파될 수 있었다. 애국선열 추모비는 이처럼 적극적으로 독립 운동이 벌어진 철원 지역의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추모비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