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6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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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應海 |
영어공식명칭 | Kim Eunghae |
이칭/별칭 | 군서(君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한성주 |
출생 시기/일시 | 1588년 - 김응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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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16년 - 김응해 무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20년 - 김응해 강계부사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30년 4월 - 김응해 안동대도호부사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36년 - 김응해 별장(別將)으로 정방산성(正方山城) 방어 |
활동 시기/일시 | 1647년 - 김응해 어영대장 부임 |
몰년 시기/일시 | 1666년 - 김응해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684년 - 김응해 신도비 건립 |
출생지 | 철원군 어운면 -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하갈리 |
묘소|단소 | 철원군 어운면 -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하갈리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대표 관직 | 어영대장(御營大將) |
[정의]
조선 후기 강원도 철원 지역 출신의 무신.
[가계]
김응해(金應海)[1588~1666]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군서(君瑞)이다. 고려의 명장 김방경(金方慶)의 후손이고, 증호조참판(贈戶曹參判) 김지사(金地四)의 아들이다. 후금(後金)과의 심하 전투에서 전사한 요동백(遼東伯) 김응하(金應河)[1580~1619]가 형이다.
[활동 사항]
김응해는 1588년(선조 21) 현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하갈리에서 태어났다. 1616년(광해군 8)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宣傳官)·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희천군수(熙川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1619년 명나라가 후금(後金) 정벌에 원군을 요청하여 도원수 강홍립(姜弘立)을 파견할 때 출정을 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형 김응하만 출정하였다. 1620년 강계부사를 거쳐 부령부사·인동부사·정주부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1630년 4월 안동대도호부사로 부임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김응해는 별장(別將)으로서 정방산성(正方山城)을 지켰으며, 적병이 한양으로 곧장 진격하자 300여 명의 기병을 이끌고 싸웠으나 패배하였다. 이후 1647년(인조 25)에 어영대장(御營大將)이 되었으며, 1666년(현종 7) 사망하였다.
[묘소]
김응해의 묘소는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하갈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