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6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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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元豪 |
영어공식명칭 | Won Ho |
이칭/별칭 | 중영(仲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한성주 |
[정의]
조선 후기 임진왜란 때 강원도 철원 지역에서 전사한 무신.
[가계]
원호(元豪)[1533~1592]의 본관은 원주(原州)이고 자는 중영(仲英)이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원송수(元松壽)이며, 어머니는 순흥안씨(順興安氏)로 생원 안순(安珣)의 딸이다.
[활동 사항]
원호는 1533년(중종 28)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났다. 1567년(명종 22) 무과에 급제한 뒤 선전관에 이어 내외직을 두루 거쳤고, 1583년(선조 16) 경원부사로 있을 때 여진족 이탕개(尼湯介)의 침입을 격퇴하였다. 1587년 전라우도수군절도사로 있을 때 전라좌도에 침입한 왜구를 막지 못하여 파직되고 유배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강원도조방장에 임명되어 여주 신륵사(神勒寺) 근처에서 남한강을 건너 북상하려는 왜군을 수일간 저지하였다. 이후 뒤로 물러나서 남한강 지류인 섬강(蟾江)에서 진을 치고 있던 중 구미포(龜尾浦)를 약탈하는 왜군을 새벽에 기습하여 섬멸하였다. 원호는 이날의 승전으로 경기도·강원도방어사 겸 여주목사에 임명되었다. 그 후 제4진으로 상륙한 모리 요시나리[毛利吉成] 휘하의 왜군 1만 4000여 명이 한양·동두천·철원·김화·평강·회양을 점령하고 함경도 안변으로 향하자 강원도관찰사 유영길(柳永吉)은 격문을 띄웠고, 원호도 이에 호응하여 군사를 이끌고 북쪽으로 향하였다.
1592년 8월경 원호는 함경도로 가던 중 철원에서 매복하고 있던 왜군 대부대에게 쫓겨 갈동(葛洞)의 산성에 들어가 왜군에 맞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원호는 사망한 뒤 병조판서·좌의정에 추증되었고, 효종 때인 1650년경 건립된 충장사(忠壯祠)에 배향되었다. 충장사는 원호가 전사한 곳인 옛 근동면 하소리에 세워졌는데, 일제 강점기에 철거되었고 지금은 DMZ 안이라서 확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