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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6209
한자 金時習傳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연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36년 - 이이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584년 - 이이 사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582년연표보기 - 「김시습전」 저술
성격 인물전
작가 이이

[정의]

1582년 율곡 이이가 강릉 출신의 김시습에 관하여 쓴 인물전.

[개설]

율곡 이이(李珥)[1536~1584]는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났으며, 조선을 대표하는 성리학자이며 사상가이다. 「김시습전(金時習傳)」『율곡전서(栗谷全書)』권14 「잡저(雜著)」에 실려 있는 이이의 작품이다.

[구성]

「김시습전」은 말미에 “문성공 이이 삼가 주상 전하의 뜻을 받들어 찬하다”라고 밝혀 놓은 것처럼, 선조의 명을 받들어 「김시습전」을 지었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의 생애와 학문을 일화와 함께 엮어서 1,800여 한자로 기록한 작품이다. 1582년(선조 15)에 지은 「김시습전」에는 더욱 완숙해진 이이의 문학적 능력이 잘 반영되어 있다. 그의 나이 47세 때였다.

[내용]

이이「김시습전」에는 김시습의 삶이 구체적 일화를 통해 전달되고 있다. 강릉사람인 김시습은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글자를 알았는데, 최치운이 이를 보고 기이하게 여겨 이름을 시습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김시습은 "세 살에 시를 지을 수 있었고, 다섯 살에 『중용(中庸)』, 『대학(大學)』에 통달하여 사람들이 신동"이라 불렀는데, 단종 3년 만[1556년]에 왕위를 뺏기자 왕에 대한 충심으로 김시습은 산으로 들어갔다. "단종의 양위 소식을 들은 김시습은 즉시 문을 닫고 나오지 아니하기 사흘이나 하더니, 이에 크게 울고 그 서적을 다 불사르고 광기를 일으켜 똥통에 빠졌다가 도망가서 불가에 의탁하였다."라는 일화라든가, 「김시습전」에서는 "위엄 있는 거동은 없으나 굳세고 곧아 사람의 과실을 용납하지 못하며, 시대를 슬퍼하고 세속을 분하게 여기었다. 기가 서려 불평이 많아서 스스로 생각에도 세상을 따라 적응을 하지 못할 줄 알고, 몸을 피해 세상 밖에서 놀았다."라면서 김시습을 평가하여 적기도 하였다.

이이「김시습전」에서 매월당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일화를 인용하고 있다. "김시습은 산전(山田) 개간하기를 좋아하여 비록 비단옷 입는 집의 아이라도 반드시 김매고 거두도록 일을 시켜 매우 괴롭게 하여 끝내 학업을 전해 받은 자가 적었다. 산에 가면 즐겨 나무를 벗겨 시를 써 놓고, 오랫동안 읊조리다가 갑자기 목 놓아 울고는 그것을 깎아 버렸고, 때로는 종이에 썼어도 사람에게 보이지 아니하고 대부분 물이나 불에 던져 버렸으며, 때로는 나무로 조각해서 농사꾼이 밭 갈고 김매는 형상을 만들어 책상 옆에 놓고 종일토록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역시 통곡하고 태워버렸다." 같은 대목이 대표적이다.

「김시습전」은 3단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도입부에서는 다른 인물전에서 볼 수 없는 가계(家系)를 구체적으로 드러낸 특징이 있다. 행적부에서는 세조의 왕위 찬탈 때문에 충격을 받고 출가하여 승려가 되거나 전국을 방랑하면서 기행을 펼치는 김시습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뤘으며, 결말부에서는 김시습의 절의를 극찬하면서 “백대의 스승”이라고 평가했다.

[특징]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이 1992년 발행한 『율곡 전서』율곡연구원이 2019년 발행한 『율곡 전서』에는 「김시습전」의 한문본 원문이 수록되어 있다. 한편, 강릉에 연고를 둔 율곡학회가 2009년에 발행한 『영동 지방 율곡 자료 집성』에는 「김시습본전(金時習本傳)」이라는 제목 하에 번역본이 나와 있다.

[의의와 평가]

「김시습전」이 지어지고 1년 뒤에 선조의 명에 의해 『매월당집(梅月堂集)』이 간행되었다. 선조 임금이 당대 최고의 유학자인 이이에게 「김시습전」을 짓도록 한 것은 신하들에게 김시습을 본받게 하려는 의도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시습전」김시습의 삶을 방내(方內)와 방외(方外)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구성되어 있다는 평가 속에, 김시습의 삶이 세속의 예속(禮俗)을 벗어나서 방달(放達)한 삶을 살아간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적 대상이 되기도 한다. 다만 김시습의 방달한 삶의 출발점이 단종에 대한 충성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유학자들의 본받을 바의 울림을 주었다는 평가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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