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0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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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拱北樓 |
영어의미역 | Gongbungnu Gate-Pavili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16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춘진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6년 1월 8일 - 공북루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7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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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공북루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성격 | 누각 |
양식 | 홑처마 팔작지붕 |
건립시기/일시 | 1603년 |
정면칸수 | 5칸 |
측면칸수 | 2칸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165 |
소유자 | 공주시 |
관리자 | 공주시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 안에 있는 조선 중기 공주 공산성의 북문루(北門樓).
[위치]
공주시청에서 웅진로를 타고 공주시외버스터미널 쪽으로 약 2.33㎞ 가면 공산성 주차장이 나온다. 공북루는 금강에 인접하여 있다.
[변천]
공주 공산성의 북문루인 공북루가 있었던 곳에는 원래 망북루(望北樓)가 있었다. 1530년(중종 25)에 증보(增補)된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망북루가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6세기 중반에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불에 타거나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공북루는 1602년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한 유근이 공주 공산성에 감영을 설치하기 위해 절차를 계문하여, 1603년에 공주목사를 겸임하라는 비답이 내려지자 산성을 수축(修築)한 후에 옛 망북루의 자리에 세운 것이다.
공북루가 지어진 지 60년 후인 1663년(현종 4)에 오정위가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하여 중수를 하였고, 1765년 관찰사 윤동승(尹東昇)이 중수를 하였다.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중수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 1903년(고종 40)에 홍승헌이 관찰사로 부임하면서 중수하였고 「중수기문」을 남겼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에도 한 차례 중수를 하였으며, 1964년 국고 보조비로 보수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형태]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홑처마의 팔작지붕이다. 높은 기둥을 사용한 2층의 누각 건축으로 위층에는 누마루를 깔았고, 아래층은 통행로로 사용하고 있다. 공산성 내의 건축물 중 규모가 큰 편으로 면적은 남문인 진남루의 두 배에 이른다. 전체적으로 보면 고창읍성의 공북루와 흡사한 모습이다. 기둥과 기둥 사이는 간격이 같으며, 공북루의 아래층 중앙에는 출입문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현황]
현재 일반인의 출입이 가능하여 금강을 바라볼 수 있으며, 1976년 1월 8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1603년(선조 36) 이후 수차례 중수를 거쳤으나 본래의 형상을 잘 간직하고 있다. 조선시대 문루 건축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